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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남평문씨(南平文氏) 가문의구미(龜尾)정착과 목면(木棉)의 전래(1)/김광수

조진향 기자 입력 2025.02.10 12:58 수정 2025.05.19 13:59

↑↑ 도천서원


남평문씨(南平文氏) 가문의구미(龜尾)정착과 목면(木棉)의 전래(1)

김광수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구미)



I. 시작하면서

우리는 언제부터 따뜻한 옷을 입었을까?

인류의 원시시대 사냥과 수렵생활을 하면서 자연에서 먹을 것을 찾고 짐승의 가죽이나 수림에서 몸을 보호하고 가릴 것을 찾았던 시대, 수많은 백성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구미의 낙동강변에는 해평습지와 갈대밭이 많았다. 불교 초전지 도개 송천 모례원에서 용성(龍城) 진종(震鍾, 1864-1940) 스님은 안거를 하고 지견이 열리어 오도송(悟道頌) “金烏千秋月 洛東萬里波 漁舟何處居 依舊宿蘆花”을 읊었다. 이 시구에는 예전처럼 갈대솜 이불에 잤다는 표현도 있다. 

조선 영조대왕(英祖大王)은 왕비(王妃)를 간택하는 자리에서 반가의 규수가 모인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엇인고?” 묻자 정순왕후 김씨는 “백성을 따뜻하게 해 주는 목화입니다.”라고 답해 지혜있는 답변으로 간택이 되었다.

천연소재 목면은 언제부터 구미에서 경작되었는가? 구미 해평지역의 목면재배가 조선 초기부터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 시원은 부민후(富民侯) 문익점(文益漸) 선생의 손자 양민공(襄敏公) 문영(文英) 선생이 일선김씨 가문으로 장가와서 처가 해평과 인연이 되었다. 또한 선산 고을의 수장인 부사(府使)가 되어 그 목면 종자를 가지고 와서 재배 보급시켰다는 전래설을 조명해 본다.


II. 남평문씨와 문영(文英)

1. 남평문씨의 가계

전설에 따르면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는 문다성(文多省)이다. 백제 개로왕 18년(472) 무진군(武珍郡)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동쪽에 장자못(長者池)이라는 큰 못이 있고, 그 못가에는 큰 바위가 솟아 있었다. 현재에도 문암(文巖)이라는 이름으로 바위가 남아 있다.

하루는 군주가 그 바위 아래서 노는데 갑자기 바위에 오색구름이 감돌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군주가 신기하게 여겨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석함이 놓여 있었다. 함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피부가 옥설(玉雪)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있었다. 군주가 기이하게 여겨 아이를 거두어 기르니, 나이 불과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지라 문(文)을 성(姓)으로 삼고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 벽상공신(壁上功臣), 신흥사(新興寺) 공신당(功臣堂)에 초상화가 올라간 개국공신으로 남평백(南平伯)의 작위에 봉해지고 98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시조 문다성은 역사적 인물이라기 보단 설화적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삼국시대 인물이라면서 시대가 안 맞아 손쉽게 후삼국시대 인물로 바꿔버렸다는 것 자체가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허구의 인물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시조단을 만들어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시조 밑으로는 자료가 없으므로 대수를 정할 때는 중시조 문익(文翼)을 1세로 계산한다.

문익은 고려 숙종(肅宗) 대의 인물이며, 고려시대 문공원(文公元)의 금석문에 등장하는 최초의 실존 인물이다. 문다성부터 문익까진 세계가 확실하지 않은 편이다. 문익의 아버지는 2군 6위 소속의 무관(武官)이었고 문익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관직을 거쳐 문관(文官)이 되었다.

문익의 세 아들 문공인(文公仁), 문공원(文公元), 문공유(文公裕) 삼형제의 등장으로 가세가 매우 크게 성장했다. 문공유는 남평현개국자(南平縣開國子)로, 문공인은 평장사(平章事)로, 문공원은 배향공신(配享功臣)이 되었다.

고려 무신정권 대에는 매우 세가가 있는 문벌귀족 가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 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무신정권 때의 문신 및 무신인 충숙공(忠肅公) 문극겸(文克謙, 1122~1189)이 유명하다. 딸이 이의방(李義方)의 제수다. 이의방의 동생 이린(李鄰)의 아내. 즉 문극겸이 장인, 이린은 사위이다. 이린과 문극겸의 딸의 6대손이 이성계(李成桂)이다.

고려사절요 제14권에서 제17권 그리고 씨족원류에 따르면, 제주 고씨는 탐라에서의 지위를 지키고자 재상이자 상장군이었던 문극겸에게 지속적으로 접촉하였고, 문극겸의 아들들인 문후식(文侯軾), 문유필(文惟弼, ?~1228) 때 되어서야(고려 고종시기) 군사를 보내어 제주양씨(濟州梁氏)를 축출하고 제주고씨(濟州高氏)는 탐라의 서쪽, 남평문씨(南平文氏)는 탐라의 동쪽으로 함께 권력을 분점했다. 그 결과, 제주 고씨는 고려의 중앙정부와 연줄을 대고, 지속적으로 성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남평문씨는 약 400년간 탐라의 동쪽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종파는 총 10개이다. 중시조 문익의 손자인 문극겸의 두 아들 대에서 갈라진다. 장남 문후식(文侯軾)의 후손들로 구성된 파는 충혜공파(忠惠公派)·감천군파(甘泉君派)·남제공파(南濟公派)·충선공파(忠宣公派) 헌납공파(獻納公派)·순질공파(純質公派)·의안공파(毅安公派)·시중공파(侍中公派)·성숙공파(成淑公派)이다. 충선공파가 붙은 파들은 전부 10세손 문익점의 자손들이다. 충혜공파는 문익점의 형인 10세손 문익겸(文益謙)이 파조이고, 감천군파는 9세손 문구(文龜)에서 갈라졌다. 남제공파(南濟公派)는 문극겸의 손자인 5세손 문착(文諑)을 파조로 한다.

중시조 문익(文翼)은 숙종 3년(1098) 좌찬선대부·급사중으로 임명되었고, 1102년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를 역임하였으며,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이르렀다. 시호(諡號)는 경절(敬節)이다.

문익의 아들인 문공인(文公仁)과 문공유(文公裕)가 문과에 급제하여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와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고, 손자 문극겸(文克謙)은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에 이르렀다. 남평 문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을 배출하였다.

관향 남평(南平)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남평읍 일대의 지명이다. 백제의 무진군(武珍郡)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는데, 백제 멸망 뒤에는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대방주(帶方州)에 속했다가 통일신라 때 무진주(武珍州)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 되어 지방 군사 조직인 10정 중 하나인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을 두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무주(武州) 현웅현(玄雄縣)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940) 나주(羅州) 남평현(南平縣)이 되었다. 성종 2년(983) 십이목(十二牧)이 설치될 때 나주목(羅州牧) 남평현(南平縣)이 되었다. 공양왕 2년(1390) 주현에서 격하되어 화순현에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조선 태조 3년(1394) 다시 주현으로 승격시켜 감무를 두었고, 태종 13년(1413) 감무가 현감(縣監)으로 바뀌었다. 고종 32년(1895) 나주부 남평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 전라남도 남평군이 되었다. 

1914년 나주군에 병합되어 남평면이 되었다가 1995년 3월 나주시 남평읍으로 승격되었다. 1993년 시조 탄강지인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풍림리(楓林里)의 문바위(文巖) 옆에 설단(設壇)하고 매년 3월 20일 단제를 모시며 장연서원(長淵書院)에 배향하여 9월 중정일에 유림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문영(文英)의 가계
 문다성(文多省, ?~?)
        │
1세  문 익(文翼, 中始祖)
2세  문공유(文公裕, 敬靖公)
3세  문극겸(文克謙, 忠肅公)
4세  문후식(文侯軾, 忠烈公)
5세  문 정(文挺, 忠翼公)
6세  문득준(文得俊, 毅安公)
7세  문극검(文克儉, 檢器監)
8세  문윤각(文允恪, 三司右使)
9세  문숙선(文叔宣, 忠貞公)
10세 문익겸(文益謙, 忠惠公) ─ 문익점(文益漸, 贈領相, 富民侯) ─ 문익부(文益孚)
                                                          │
11세                                        문중용(文中庸, 獻納)
                                                          │
12세 문 래(文萊, 靖惠公) ── 문 영(文英, 贈吏判 襄敏公)
                                                          │
13세                                         문 관(文琯, 判尹) ─ 문 전(文琠, 監司)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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