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13. 새재와 신립 장군
신립은 1546년(명종1년)에 태어났다. 자는 입지(立志)이고 시호는 충장(充壯)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생원 화국의 아들로 2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도총부 도사, 경력을 지냈으며 진주 판관을 거쳐 1583년 온성부사가 되었다.
북쪽 변방에서 육진을 넘나들면서 변방 양민들을 괴롭힌 니탕개를 두만강을 건너가서 소굴까지 완전 소탕하고 개선하는 공을 세웠다. 니탕개를 소탕한 공으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0년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그 이듬해에는 한성부 판윤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순변사에 임명되어 출전하는 신립을 선조께서 친히 보검을 하사하며 격려하였을 정도로 신립은 무예가 출중하고 또한 용맹을 따를 자 없는 당시 최고의 장수였다.
하지만 신립은 새재를 지키지 못하여 천추의 한을 남겼으며 충주 달래강에서 배수의 진을 쳐서 소서행장의 대군을 맞아 선전했으나 역부족으로 패하고 부장 김여물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신립은 충장(忠壯)이라는 시호와 함께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신립 장군이 새재를 버려두고 충주 탄금대로 한발 물러나서 배수의 진을 치게 된 것은 한 여인의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화(說話)가 전해오고 있다.
신립이 젊은 시절 북한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산속에서 날이 저물었다. 산속 이곳저곳을 헤매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는 곳을 발견하고는 불빛을 따라갔더니 깊은 산중에 의외로 큰 기와집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대문을 두드려 주인을 찾으니 과년한 처녀가 나와서는 이집에는 밤마다 귀신이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재워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처녀는 숟가락 한단을 들고 와서는 원래 이집에는 숟가락 수만큼 식구가 많았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귀신이 나타난 후론 한사람씩 죽어가서 이제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하였다. 오늘이 그믐밤이라 오늘밤에 귀신이 나타나는 날이니 어서 이곳을 떠나라고 하였다. 신립은 처녀만을 그 곳에 남겨둔 채 떠날 수가 없어서 그 집에서 밤을 보내기로 작정을 하고는 후미진 곳에 숨어서 귀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지나자 큰 바람이 일어나면서 방안에 등불이 꺼지고 대문이 덜커덩하고 열리더니 머리가 세 개가 달린 삼두귀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신립은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후들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는 삼두귀신을 향하여 "너는 무슨 원한이 있길래 무고한 사람을 헤친단 말이냐!"하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삼두귀신은 신립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넙죽이 큰절을 올리며 "장군께서 와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하고는 "제가 사람을 헤치려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저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만 기절하여 죽었습니다."하였다.
삼두귀신은 옛날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가 이집 뒤뜰에 금은보화를 묻어두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금은보화가 요귀로 발동을 하게 되었다면서 그 금은보화를 꺼내서 햇빛을 보게 한다면 요귀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처녀는 그 와중에 혼절하여 실신 상태가 되었다가 날이 밝으면서 가까스로 깨어났다.
신립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처녀는 목숨을 구해주어 감사하다고 하면서 가족들 모두가 죽고 없는 이 산속에서 혼자서는 살수가 없으니 자기를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신립은 근엄한 장인이신 권율장군이 생각나서 처녀의 간청을 선뜻 승낙할 수가 없었다.
처녀는 종살이라도 좋으니 제발 데려가만 달라고 매달리다가 나중에는 막무가내로 신립을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신립은 난처하였다. 하지만 처녀를 데리고 서울로 갈 수는 없었다. 처녀는 신립에게 한사코 애원을 하였으나 신립은 애원하는 처녀를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기어이 혼자서 길을 떠나고 말았다.
처녀는 떠나는 신립의 등 뒤에서 "장군님! 장군님!"하면서 계속해서 애원을 하였고 그 목소리가 너무도 애절하여 신립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처녀는 지붕위에서 뛰어내려 그만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처녀는 죽은 원혼이 되어 항상 신립 곁에 맴돌게 되었다. 신립이 전쟁에 나갈 때면 그 처녀 귀신이 꿈속에 나타나 작전을 일러주는데 처녀귀신이 일러주는 작전대로만 하면 백전백승이었다. 신립이 문경새재에 진을 치려고 하던 그날 밤 꿈속에서도 어김없이 그 처녀귀신이 나타났다.
“나라의 운명이 장군 두 어깨에 걸려있는데 어째 새재와 같이 협소한 곳에서 포진을 하여 일을 망치려 하십니까! 장군의 병사는 절반가량이 말을 탄 병사인데 험난한 산중에서 전투를 하는 것은 불리합니다.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친다면 장군의 기마병이 크게 활약하여 장군께서는 대성을 거둘 것입니다”
신립이 그 처녀귀신이 일러준 대로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을 맞아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여인의 한이 자기의 청을 거절한 신립에게 복수를 하기 위하여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게 하여 실패 하도록 유도했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신립이 새재를 버려두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쳐서 실패한 것을 두고 신립은 지모가 없는 장수라는 평과 함께 천험의 요새인 새재를 지키지 못하여 왜적이 삼천리강토를 유린하게 한 천추의 한을 남긴 패장으로 기록되고 있어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