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계신 시골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것은 작약꽃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옛집을 지키고 계신다.
그 집은 나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집이고, 나의 할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그리운 할아버지가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시고난 후 잉걸불이 사그라들고 나면 숯을 설설 끌어내어 사랑방 커다란 상자 속에 쟁여둔 겨우내 먹을 고구마 몇 개를 가져다 재와 함께 끌어 묻어두셨던 아궁이가 있던 곳이다. 고구마가 달큼하고 고소한 냄새로 익어가면 뜨거운 고구마를 손에 들고 호호 불어 껍질을 까서는 또다시 호호~ 불어 입에 넣어주시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지금은 가마솥도, 외양간에 매어 있던 소나 송아지도, 아궁이도 사라지고, 할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신지 너무나 오래된,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는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 바로 어머니가 계신 친정집이다. 아이들에겐 외갓집으로 기억되는 곳.
명절이면 오 남매 가운데 아직 미혼인 막내 동생을 제외하고 네 집 식구들이 마당에 숯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돼지고기나 석화, 소고기를 적쇠에 올려 구워 먹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갓 뜯어온 상추나 쑥갓, 풋고추와 함께 편으로 썬 마늘을 쌈장에 찍어 뛰어다니며 놀기 바쁜 아이들이나 고기를 굽는 사람들의 입에 밀어 넣어주던, 입이 터져라 우적우적 상추쌈을 씹으며 밤새 소주잔이나 맥주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곳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가 내리 터를 잡고 사셨던 곳. 어느 날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고민하다가 듣게 된 먼 조상의 슬픈 이야기. 그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던 기억들이 새빨간 작약꽃으로 함초롬히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