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빈집들이 많이 늘어나고 마을에 사는 분들이 나이드셔서 돌아가시거나 연로해지신 모습을 뵐 수 있습니다. 어릴 때 함께 뛰놀던 언니, 오빠, 동생들은 모두 타지로 나가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고부터 그들에게는 고향으로 불리지요.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나 어쩌다 한번씩 들르는 쉼터 같은 곳. 고향을 지키는 친척이나 가족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래도 일년에 한 두 번은 찾겠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발길을 끊게 되는 곳이 고향이 아닐까 합니다.
이젠 새로운 사람들이 집을 짓고 이주해와서 조금씩 마을 풍경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인가 못 가로 든든한 둑이 쌓더니 가드레일도 설치했습니다. 좀 지나서 들러보니 이번엔 가드레일에 색을 입혀 동네 분위기를 확 바꿔놓기도 합니다.
가드레일에 마가렛 화분이 놓이기도 하고, 못둑으론 금계국이 피고, 줄장미가 새빨갛고 고운 꽃잎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멀리 금오산이 여신의 자태로 누워있는 모습이 늘상 보이는데 가끔은 구름에 뒤덮여 있기도 하고요. 낙동강은 이 마을과 함께해 온 젖줄이지요. 걸에 가서 목욕도 하고, 낙동강가에서 헤엄치다가 아이 몇이 휩쓸려 영영 돌아오지 못해 가슴에 묻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 마을.
마을 뒤로 자고산이 있고 그 정상에 몇 해 전 전망대가 생기면서 밤이면 색색의 불꽃이 반짝이는 곳이지요. 요 근래에는 산 중턱에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을 싹 잘라내고 그곳에 편백나무숲을 조성한다고 정리하고 있는데 마치 민둥산처럼 보여요. 편백나무가 자라 편백나무숲이 된다면 멀리서 아주 멀리서도 편백나무숲을 보러 올까요?
포슬포슬한 흙이 콩고물처럼 고소한 흙냄새를 풍기고, 물댄 논에는 모내기를 끝낸 모가 하늘빛 잠긴 물에서 가냘프게 흔들립니다. 고향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이곳에 심겨져서 자랐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보다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이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고 또 그들 아이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지금 고향은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서서히 바뀌어서 먼 곳에서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면 변해버린 낯선 분위기 때문에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고향의 느티나무는 여전히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하늘에는 구름들이 높게 또는 낮게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