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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뜰 책 이야기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1-20

조진향 기자 입력 2025.08.04 12:36 수정 2025.10.08 16:11




어하가련 어하가련
이 무삼 인연인고

봉순이는 연못 속에 퐁당퐁당 돌을 넣으면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유리알같이 맑게, 햇빛이 그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삼월아! 나 업어주어."
 서희가 쫓아왔다.
 "그러지요, 애기씨."
 삼월이는 얼른 툇마루에서 일어나 서희에게 등을 내밀었다. 삼월이는 서희를 업고 뜨락을 왔다갔다 하면서 봉순이를 따라 흥얼흥얼하더니 뚝 끊는다. 봉순이는 더늠으로 심청가 중의 걸유육아(심청이를 안고 젖을 먹이러 다니는 대목)의 대목을 부르고 있다.

아가아가 우지마라
너의모친 멘데갔다
낙양동촌 이화정에
숙낭자를 보러갔다
황릉묘 이비한테
회포말을 하러갔다
너도너의 모친잃고
설움겨워 우느냐
우지마라 우지마라
너팔자가 얼매나좋면
칠일만에 어미잃고
강보중에 고생하리
우지마라 우지마라
해당화 범나비야
꽃이진다 설워마라
명년삼월 돌아오면
그꽃다시 피나니라

 "봉순아, 사람 울리지 마라, 우찌 그리 슬프노."
 삼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봉순네 눈에서도 눈물이 날 뻔했다. 이때 뒤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났다. 돌아보는 삼월의 젖은 눈에 날이 선다. 귀녀가 할랑할랑 상체를 흔들며 다가왔다.
 "아아들이 선잠을 깨문 운다 카더마는 이 아아는 웃네? 서천 서역에 가서 불로장수 선약이라도 구해오는 꿈을 꾸었나?"
 목소리에도 날을 세우며 삼월이는 빗대었다.
 "삼월아."
 "와 부르노. 동티 날라. 내사 니가 정더워지믄 겁나더라."
 부딪치기만 하면 입씨름을 벌이는 이들은 벌써 이력이 나서 수작의 수가 여간 높지 않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 안 카더나"
 하면서 귀녀는 봉순네 쪽을 힐끗 쳐다본다. 봉순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러나 은근히 봉순네를 약 올려주려는 저의가 숨어 있다.
 "그렇다더라. 그거는 안다마는 나는 니하고 동사(同事)하기 싫구마."
 "누가 나하고 동사하자 카나. 내가 멋이 답답하고 기럽아서(그리워서), 나는 아무 서럴 것도 없다. 어매 사랑 님우 사랑 잃어부린 너와 애기씨가 업고 업히고 해서 이별노래를 듣고 있으니께 가련키는 하다마는 우짠지 우습기도 하고, 삼월아? 니 마음 내가 아니라."
 "주둥이를 문디러주까 싶으다마는 손 씻을 물이 없일까 싶어서 그만둔다. 어 가서 서방님께 세숫물이나 떠 올리라."
 "배가 좀 아픈가 배?"
 "운냐. 배가 좀 아프다. 좀 만지도고."
 삼월이 귀녀 앞으로 다가서는데,
 "퇴!"
 "아니!"
 귀녀가 소리를 질렀다. 삼월이에게 업혔던 서희가 귀녀 얼굴에 침을 뱉었던 것이다.
 "애기씨!"
 봉순네가 큰소리로 불렀다. 귀녀는 치맛자락을 걷어 급히 얼굴을 닦고 삼월이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봉순이도 웃었다. 길상이는 웃다 말고 민망한 듯 엉거주춤 일어선다.
 "깨소곰같이 꼬시구나. 호호호... 싸지 싸아. 객쩍은 소리하믄 그리 당하는 법이니라."
 봉순이는 신이 나서 연방 웃는다.
 "머가 우습노!"
 귀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머가 우습노!"
 봉순이의 머리를 쥐어박은 귀녀는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원한과 저주가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눈길을 서희에게 쏟더니 별당 뜰에서 총총히 사라졌던 것이다.
 "애기씨!"
 바늘을 옷섶에 꽂으며 뜰로 내려서는 봉순네의 눈빛은 매우 엄격했다. 서희는 봉순네의 전에 없는 눈빛이 조금은 두려웠던지 삼월이의 목을 두 손으로 꼭 껴안으며 비스듬히 얼굴을 누이고 피시시 웃었다.
 "나쁜 짓입니다. 짐승한테도 침은 뱉아서 안 되는데 마님께서 아시문 버릇없다고 봉순네가 야단맞겄십니다."
 "안 그럴게. 귀녀 그년 미운걸"
 낮에 잘 놀더니 지금 서희는 입을 꼭 다물고 건강한 숨소리를 내며 잔다.
 '사램이란 천 층에다 구만 층이라 하기는 하더라마는 우찌 귀녀 그 아아는 성미가 그럴꼬."
 봉순네는 등잔불을 끄기 위해 서희에게 베어준 팔을 살그머니 뽑으려 한다. 서희는 몸을 옴지락거린다. 봉순네는 빼내려던 팔을 잠시 그대로 두고 서희의 기색을 살핀다. 작은 손이 와서 봉순네의 앞가슴을 마구 더듬어댄다. 작은 손은 옷섶을 헤치고 유방에 와서 닿았다. 잠결에도 감촉이 달랐던지 서희는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는 눈을 비비며 봉순네를 내려다본다. 그는 눈을 비비며 봉순네를 내려다본다 제 어미가 아닌 것을 확인한 서희는 조용한 밤을 찢어발기듯 울음을 터트렸다.

<토지> 1부 1권 p79-83 중에서
 

어머니인 별당 아씨가 머슴 구천이와 달아나고 어린 서희는 엄마를 찾지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 서희를 달래주려고 봉순이는 심봉사가 어린 심청이를 안고 젖동냥을 다니면서 부르던 심청가의 한 구절을 청승맞게 읊조리고 구슬픈 가락에 눈물을 흘리는 삼월이의 모습을 보던 귀녀는 비아냥거립니다. 그런 귀녀를 삼월이의 등에 업혀있던 서희는 침을 뱉어 버립니다. 상전이니 어쩌지도 못하고 분해하는 귀녀를 보는 삼월이나 봉순이는 속이 시원하다며 웃고, 길상이는 웃다가 엉거주춤 일어서고...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말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 인물들의 심술궃은 행실도 이해가 가고 참 착한 마음을 지닌 인물에게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게되는 것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도 그렇지요. 아무리 얄궃은 인물이라도 그 입장에선 그럴수도 있지. 하며 공감하고 인간만사는 거기서 거기지만 그 속에도 의리와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1부는 1897년 한가위부터 1908년까지 약 10년간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5대째 대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입니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동학운동, 개항, 일본의 침입, 갑오개혁 들이 토지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최참판댁의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어머니 윤씨부인, 동학장군 김개주와 김환, 별당아씨, 소작인들의 이야기가 서희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프랑스의 발자크가 <인간희극>을 썼다면 우리나라에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이처럼 상세하고 개성넘치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네요. 무더운 여름철 도서관을 찾아 대하소설 <토지> 속으로 빠져들어 무더위를 잊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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