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공경희 옮김, 열린책들, 2025
내 숙모 메리 비턴이 봄베이에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낙마 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밝혀야겠군요. 내가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받은 밤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이 통과된 때였습니다. 변호사의 편지가 우편함에 떨어졌고, 그것을 읽고 숙모가 내 앞으로 평생 연간 5백 파운드씩을 남겨 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투표권과 돈 두 가지 가운데 돈이 훨씬 중요해 보였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 전에 나는 신문사들에서 소소한 일거리를 얻어 여기저기서 열린 당나귀쇼나 결혼식 기사를 써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봉투에 주소쓰기, 노부인들에게 책 읽어주기, 조화 만들기, 유치원생에게 알파벳 교습하기 등으로 푼돈 벌이를 했습니다. 1918년 이전 여성들에게는 그런 일자리들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해 본 여성들을 알 테니 그 일의 고단함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또 여러분이 시도해 봤을 테니, 그렇게 번 돈으로 살기가 얼마나 고달픈지도 새삼 말할 필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심한 형벌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그 시절이 내면에 새긴 독 같은 두려움과 비통이었습니다. 우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늘 해야 했던 것. 늘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한 일 같았고, 위험 부담이 너무 커 모험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부하고 아첨하면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던 것. 그 다음은 숨기고는 살 수 없는 재능이,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재능이 소멸해 가고, 그와 함깨 나 자신과 영혼도 소멸해 가고 있던 것. 이 모든 게 봄꽃을 갉아먹고 나무의 심장부를 해치는 녹병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숙모가 세상을 떠났고, 내가 10실링권을 바꿀 때마다 그 악영향이 조금씩 벗겨지며 두려움과 비통이 없어집니다. 잔돈을 지갑에 넣으면서, 그 시절의 비통함을 기억하니 고정 수입이 가져오는 사람의 성격 변화가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세기에도 여성은 예술가가 되도록 격려받지 못했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히려 냉대받고 얻어맞고 잔소리를 듣고 훈계받았지요. 거기에 맞설 필요 때문에, 반대할 필요 때문에 마음을 앓고 기죽었을 게 자명합니다.
의식적인 편견을 갖고 쓴 글은 죽을 운명이니까요. 그 글은 숙성을 멈춥니다. 하루 이틀은 똑똑하고 효과적이고 강력하고 훌륭해 보이겠지만, 밤이 되면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자라지 못합니다. 마음에서 남성과 여성의 통합이 이루어진 뒤에야 창의적인 예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질적인 것들의 결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가가 완전히 충만하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면 온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자유가 있어야 하고,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바퀴가 삐걱대서도, 빛이 깜박여서도 안 됩니다. 커튼을 단단히 쳐야 합니다. 작가는 일단 자신의 경험이 끝나면 뒤로 기대 누워, 마음이 어둠 속에서 혼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놔두어야 합니다.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거나 질문하면 안 됩니다. 그보다 장미의 꽃잎을 따거나, 백조들이 강에서 차분히 떠가는 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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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관습처럼 내려온 습관이나 사상이나 생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불가능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100년 전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분명 다릅니다. 그 사이에 무수한 변화가 있었고 현대는 양성평등 사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보고 두려워하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고정된 수입보장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와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남성들도 가장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먹고 살기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건 압니다. 그렇지만 여성들도 남성 못지 않게 투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양성을 모두 아우르는 사고 방식을 견지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