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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32. 조령성과 조령관 / 이정록

조진향 기자 입력 2025.12.17 08:07 수정 2026.01.09 08:35

↑↑ 조령관의 겨울(시진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32)


이정록

32. 조령성과 조령관(문경새재 제3관문)

 기호(畿湖)지방과 영남(嶺南)을 가로질러 한양에서 부산(동래)으로 가는 영남대로, 백두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영남대로와 백두대간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조령관이다. 

 조령관의 남쪽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초곡천을 거쳐 영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에 합류하여 부산 앞바다로 흘러들고, 북쪽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충주 달래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양수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양을 감돌아 인천 앞바다로 흘러든다. 조령관은 한강과 낙동강의 상징적인 분수령이고,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목구멍과 같은 곳이다.

 억새풀이 많은 고개라서 새재(草岾)라 불렀던 고개, 세월이 흐르면서 조령(鳥嶺)으로 바뀌었지만,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안부(鞍部) 해발 638m의 산마루가 새재의 영마루고 새재의 영마루 홍예문 문루위에 있는 누각이 조령관이다.

 1907년 육축만 남고 훼손된 것을 1976년 홍예문과 누각 좌우의 무너진 성곽을 보수하였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각 1개씩 있고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이다. 좌우 석성은 높이 4.5m이고 폭은 3.2m이다. 조령관을 중심으로 서편으로 400m 동편으로 400m다.

 조령관 서편 조령산 산자락에 있는 산신각은 조령산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으로 새재를 넘던 길손들이 안전을 기원하던 곳이다. 산신각 밑에 있는 조령약수는 조령성 축성 공사를 할 때에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 약수로서 새재를 넘는 많은 길손들에게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사속의 감로수(甘露水)로서 사시사철 솟아올라 이 약수를 오랫동안 마시면 장수(長壽) 한다는 백수령천(百壽靈泉)이라고 전해내려 온다.

 문경새재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소서행장(고니시)과 가등청정(기요마사)이 넘었던 고갯길이고, 일본으로 가는 평화의 사절단인 통신사도 이 고개를 넘었다.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이라는 고을 이름이 좋아 청운의 꿈을 품은 영남의 선비는 물로 호남의 선비들 까지 불러들였던 고갯길 이다.

 과거에 낙방한 선비가 눈물을 삼키며 넘었던 고갯길이기도 하고, 경복궁 중창 때 노역에 동원된 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고갯길이기도 하다. 그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공사장 연장 자루에 사용 될 물박달나무도 새재를 넘었고, 새재의 토속소리 새재아리랑도 그들과 함께 새재를 넘었다.

 조선왕조 오백년이 흐르는 동안 나라 안에 걸린 수많은 고개 중에 가장 많은 발길이 지났던 고개가 문경새재다. 이렇듯 문경새재는 문경사람들 만의 고개는 아니었다. 조선사람 모두의 고개였다. 새재를 넘었던 또는 새재를 넘지 못했던 간에 조선사람 모두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응어리가 문경새재이고 굽이굽이 눈물을 흘리며 넘어야하는 운명 같은 고개가 문경새재였다. 그러기에 숫한 애환이 담긴 고갯길이며 고달픈 역사가 함께한 고갯길이며 겹겹이 설움이 쌓인 고갯길이 문경새재였다.

 신립장군이 이곳 새재를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게 하여 실패하게 한 원한의 처녀귀신 얘기를 비롯하여, 삼전도의 곤욕을 치러야했던 굴욕의 시대를 살았던 최명길과 서낭당 여귀에 얽힌 얘기며, 산신령과 호랑이 얘기, 산적 얘기, 그 외에도 많은 얘기들이 새재길 굽이굽이마다 서려있다. 이런 새재 길을 걸어가노라면 누구든 깊은 사색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새재를 넘나들면서 주옥같은 많은 시문을 남겼다. 새재의 옛 오솔길을 걷노라면 시인 묵객이 아니라도 절로 시심이 일어난다. 새재를 넘는 사람은 새재 정기(精氣)를 받아 모두다 시인이 된다.

 새재는 누구나 넘을 수 있는 고갯길이며, 새재는 누구나 한번은 넘어보고 싶은 고갯길이다. 새재는 처음 넘는 사람도 전혀 낯설지 않은 고갯길이며, 새재는 열 번을 넘어도 지루하지 않은 고갯길이고, 그리고 새재는 누구나 이미 마음속으로 골백번도 더 넘었던 고갯길이다.

 새재를 넘으면서 남긴 선현들의 시 몇 편 소개합니다.

<踰鳥嶺> <조령을 넘어며>
崎嫗鳥嶺似羊腸 <꾸불꾸불 조령 길 양 창자 같은데>
瘦馬凌兢步步僵 <여윌대로 여윈 말 두려워서 걸음마다 쓰러지네.>
爲報行人莫相怨 <길가는 이는 우리를 나무라지 말게나.>
欲登高處望吾鄕 <높은데 올라 내 고향땅 보려 함인걸.>
徐居正(서거정) 사가시집 권2

<鳥嶺途中> <조령을 넘다가>
雉鳴角角水潺潺 <산 꿩은 꾹꾹꾹 시냇물은 졸졸졸>
細雨春風匹馬還 <가랑비에 봄바람 맞으며 말 타고 돌아오네.>
路上逢人猶喜色 <길에서 사람 만나니 참으로 반가운데>
語音知是自鄕關 <말소리 듣고 보니 고향사람인줄 알겠네.>
李滉(이황) 퇴계집 별집 권5

<踰鳥領> <조령을 넘으며>
旅愁京洛幾年春 <서울에서 나그네의 설움 몇 해였든가>
過嶺如今發興新 <조령을 넘는 지금 기분도 새롭구나.>
自從踏得鄕關土 <이제 고향 땅을 밟게 되니>
草樹相看亦故人 <초목도 오랜 친구처럼 서로 반기네.>
栢潭(백담) 具鳳齡(구봉령) 백담집 권2

<鳥嶺> <조령>
到嶺知名鳥 <영마루에 다다르니 조령의 명성 알겠거니>
纔容鳥道通 <겨우 새 한 마리 지나갈 길 열려있구나>
絶崖斜抱石 <깎아지른 절벽 비스듬히 바위를 안고 가야 하는데>
危棧細盤空 <작은 나무사닥다리는 위태롭게 바위 위에 걸렸네.>
勢壯秦函比 <웅장한 그 형세 진나라의 함곡관에 견줄만하고>
形奇蜀劒同 <기이한 형세는 촉나라 검각 같구나.>
宣興天將歎 <참으로 명나라 장수가 탄식 할 만하거니>
無策恨申公 <아무 계책 없었던 신립장군이 한스럽네.>
水村(수촌) 林 埅(임 방) 수촌집 권1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世宗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선현과 함께 넘는 문경새재』(문경시 발행)
『새재의 전설과 신앙』(문경시 발행)

사진자료 제공 문경시

↑↑ 저자 이정록

조령한시회 사무국장(전)
성균관유도회 문경지부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회원(수필, 시)
국가기록원 문경시 민간기록 조사위원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연구원
경상북도 향토사협의회 총무국장


학력
안동대 한문학과 졸업
안동대 대학원 한문학과 재학 중


이상으로 문경새재의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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