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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암사판각수호계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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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金泉의 향안鄕案과 계안稧案에 대한 고찰考察(3)
이갑희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김천)
Ⅱ. 조선시대(朝鮮時代) 김천(金泉)의 향안(鄕案)
3. 지례향안(知禮鄕案)
지례향안 기록은 구성면 작내리에 위치한 의산서당(義山書堂)의 경인사(景仁祠)에 소장되고 있었는데 향안의 크기는 가로 30㎝, 세로 45㎝의 간지에 비단으로 된 표지로 제책된 3권이다 연대를 간지로만 표시되어 있어 명확하지 않으나 좌목(座目)으로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임자년(壬子 1612년) 3월 일 구향안(舊鄕案)
김호(金鑊) 서필원(徐必遠) 이성해(李成楷) 김호(金鎬) 000 000
이정영(李廷瑛) 이정황(李廷璜)
제(際) 향중(鄕中) 김(金) 이(李) 이(李) (手決)
무오년(戊午 1678년) 5월 일 향안(鄕案)
이정복(李廷馥) 김덕겸(金德謙) 서진(徐振) 이천영(李千英)
김덕부(金德孚) 이원영(李元英) 이상영(李商英) 김덕함(金德咸)
이태영(李台英) 김덕재(金德濟) 이수강(李壽崗) 이필형(李必馨)
서탁(徐擢) 김만형(金萬亨) 금시(琴詩) 이필무(李必茂)
박문욱(朴文郁) 이필환(李必煥) 이필함(李必馠) 이만창(李萬昌)
이박(李璞) 이재백(李再百)
제(際)
경자년(庚子 1720년) 5월 일 향안(鄕案)
이필명(李必明) 이인화(李仁華) 김만중(金萬重) 이재(李提)
김만휘(金萬徽) 김만흥(金萬興) 김만진(金萬珎) 이익화(李益華)
김정근(金挺沂) 김만옥(金萬玉) 김만규(金萬珪) 김만최(金萬㝡)
이성직(李星稷) 서경행(徐景行) 서경신(徐景新) 이성종(李星宗)
이여담(李如聃) 김만기(金萬璣) 이여익(李如益) 김휘일(金輝一)
이성오(李星五) 이기웅(李基雄)
제(際)
임인년(壬寅 1722년) 11월 일 향안(鄕案)
이중형(李重亨) 이재형(李再亨) 이진형(李震亨) 서경지(徐景至)
박경(朴璟)
제(際)
을사년(乙巳 1725년) 12월 일 향안(鄕案)
이정형(李廷亨) 서경휘(徐景徽) 이여직(李如稷) 이성천(李星天)
김휘익(金輝益) 김휘도(金輝道) 김휘성(金輝聖) 박립(朴琳)
이암형(李安亨) 김효천(金孝天) 이성채(李星彩) 김만광(金萬光)
김휘국(金輝國) 이기현(李基玄) 김휘원(金輝遠) 이도성(李道成)
이기석(李基碩) 김휘복(金輝復) 박완(朴琓) 김휘택(金輝宅)
李준현(李俊賢) 이도홍(李道弘) 김정택(金挺澤)
제(際)
임오년(壬午 1762년) 9월 일 향안(鄕案)
이후인(李垕仁) 김정연(金挺涓) 이감(李榦) 이수적(李樹績)
이숙(李橚) 김세완(金世琓) 성경(成敬) 이천성(李天成)
김구(金球) 김세보(金世寶) 이태적(李台績) 신이천(愼爾天)
김전학(金挺㶅) 이집성(李集成) 김유(金瑜) 김돈(金墩)
김각(金珏) 김종(金琮) 이희보(李禧普) 김용(金瑢)
이함(李? ) 전욱(全頊) 배익조(裵翊租) 이화적(李華績)
박동일(朴東一) 형달도(邢達道) 김대명(金大鳴) 이윤(李玧)
김여현(金汝鉉) 김상(金瑺) 강민문(姜玟文)
제(際)
을류년(乙酉 1765년) 12월 일 향안(鄕案)
이세영(李世永) 이정문(李挺文) 이선보(李宣普) 박동식(朴東植)
김원명(金遠鳴) 김련(金璉) 박동영(朴東榮) 이세진(李世振)
김기(金璣) 박동형(朴東亨) 이언창(李彦昌) 박동필(朴東弼)
박동권(朴東權) 서대성(徐大成) 이언신(李彦臣) 이석능(李碩能)
이언국(李彦國) 전태노(全泰魯) 김경명(金慶鳴) 김봉명(金鳳鳴)
이석팔(李碩八) 이진(李瑨) 강치주(姜致周) 이지술(李志術)
이선민(李宣民) 서대익(徐大益) 이선룡(李宣龍)
제(際)
Ⅲ. 김천지역의 현재까지 전하는 계안(禊案)
1. 현재까지 전하는 계의 현황
현재 김천지역에서 전해지는 계안(禊案)중에서 서문(序文)과 좌목(座目) 절목(節目)을 갖추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계(禊)는 16개소로 아래 도표와 같다.
2. 각 계안의 상세 내용
1) 사성족계(四姓族禊)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거주하는 사성(四姓: 河濱李氏, 仁川李氏, 星山呂氏, 晉州姜氏)는 광명마을(기로마을)에 거주하면서 혼맥(婚脈)으로 맺으진 성씨이다. 즉 처음 하빈이씨(河濱李氏)가 처음 이 마을에 정착하고 인천이씨(仁川李氏) 승원(承元)공이 하빈이씨와 혼인하여 정착하고 다음으로 성산여씨(星山呂氏) 종호(從濩)공이 인천이씨와 혼인하였고 진주강씨(晉州姜氏) 강설(姜渫)이 성산여씨와 혼인하여 4성씨가 한 마을에서혼반으로 맺어진 성씨이기 때문에 각 성씨별 유대강화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1556년(명종11)에 수계하여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 음사계(蔭士契)
조선시대 김산군(金山郡: 김천)에는 연계소(蓮桂所)가 있었는데 연계소는 문과(文科)나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으나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던 사람들의 모임장소가 없어 1855년에 향내의 부로(父老)중 음사(蔭仕)사람들이 수계하여 만든 조직체이다.
3) 구로시사계(九老詩社契)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일원의 뜻이 맞는 6문중(六門中) 9명의 노인들이 1873년에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자녀들이 향시나 과거에 나가면 반전(盤纏)을 주며 계원이 별세하면 부조를 하기로 수계한 조직체이며 현재까지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오고 있다.
4) 안서동약(安棲洞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안서동(安棲洞)의 최창락선생이 1880년 동민들과 동약(洞約) 12조를 만들어 군아(軍衙)의 승인을 받은 특이한 동약이다. 안서동의 화순최씨(和順崔氏)와 타성(他姓)을 규합하여 향풍(鄕風)이 땅에 떨어진 것을 바로잡고 풍속교화를 위하여 수계한 조직체이다.
5) 이동대계(二同臺契)
김천시 대덕면 화전리 월매산(月梅山) 아래 계산(溪山)의 아름다움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선경(仙境)을 이루는 지역이며 흔히 이르기를 “매화(梅花)가 땅에 떨어진 곳”이라 칭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보존하기 위하여 동향(同鄕) 동지(同志)의 뜻을 취하여 이동(二同)이라는 이름으로 1895년에 수계한 조직제이며 마을 입구에 비를 수비하고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6) 설진대계(雪塵臺契)
김천시 대덕면 대덕산에서 발원한 감호변에 주변이 아름답고 선경이 좋은 바위가 있으니 설진대(雪塵臺)라 명명하고 관내 죽마고우(竹馬故友)로 칭하는 노인들이 춘추(春秋)로 모여 시주(詩酒)를 즐기는 모임을 하기로 결의하고 1902년에 수계하여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조직체이다.
7) 송계서당 강안(松溪書堂講案)
1702년에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에 처음 서당을 개설하여 구성면 광명리로 이건하여 존치되었으나 소실되고 1995년 구성면 광명리 서당구지(書堂舊址)에 송계서당 기적비를 수비하였다 그 기록에 의하면 송계서당 강안은 송계서당의 당규와 친목을 목적으로 강규를 제정한 강안이다.
8) 호의재계(好懿齎稧)
김천시 조마면 강평마을에 자양사(紫陽祠)를 설치하여 강설(姜渫), 강여호(姜汝호) 두분의 위패를 봉안하여 왔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강당만 존치되고 묘우(廟宇)를 멸실 시켰으나 1860년 도내 유림들이 다시 복원키로 하고 우선 재력이 없으므로 1873년 호의재유계(好懿齎儒稧)를 조직하여 복원하는데 목적을 두고 수계한 조직체이다.
9) 석곡서당계(石谷書堂契)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 소재하고 있는 석곡서당(石谷書堂)에서 수학하였던 유생들이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을 기리고 서당의 발전 유지와 재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1890년에 수계하였으며 현재까지 후손들이 그 유지를 이어오고 있다.
10) 동참계(同槧契)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선생이 후진들을 위하여 강학하고 있던 강학공간이 협소하고 불편하자 측근에서 배움을 청하던 제자들이 선생의 숭고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하여 1943년에 수계한 조직체이다.
11) 광암정호의재계(廣巖亭好懿齎禊)
광암(廣巖) 여석보(呂錫輔)선생이 향리의 후진을 위하여 향풍(鄕風)을 일으키고 배움의 터전을 마련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과 재생들이 광암정(廣巖亭)을 건립하고 광암선생의 뜻을 먼 후일에까지 전하기 위하여 1944년에 수계한 조직체이다.
12) 청암사판각수호계안(靑巖寺板閣守護案)
김천의 불령산(佛靈山) 청암사(靑巖寺) 만세루에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선생 유고(遺稿)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본손가(本孫家)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승도(僧徒)를 지정하여 수호하였으나 사찰이 퇴락하고 만세루도 무너져 없어지면서 판목을 보호하기 위하여 1901년 보존에 마음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모아 수계한 조직체이다.
13) 내신정(來新亭)
1904년 부제학(副提學) 허석(許襫)과 청농(靑儂) 이용우(李容愚) 2인이 발의하여 고을의 선비들과 향약을 세울 논의를 일으켜 밭(田)을 마련하여 이것으로 기틀을 삼아 개령현(開寧縣)의 향사당(鄕射堂)을 향약소(鄕約所)로 하였으나 임자년(1912)에 군의 동쪽 1리에 새 건물 1동을 마련하여 편액을 내신정(來新亭)이라 하고 선대에서 모시던 향안(鄕案)을 이곳으로 옮겨와 옛것과 같이 간직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4) 첨록재동학계, 창녕조씨종중규약, 구보계
첨록재동학계(瞻綠齎同學禊): 죽포(竹圃) 정규복(鄭圭復, 1882∼1951)이 서당을 개설하여 한학을 가르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첨록재(瞻綠齎)를 짓고 1955년에 첨록재동학계(瞻綠齎同學禊)를 결성한 조직체이다.
창녕조씨종중규약(昌寧曺氏宗中規約): 김천시 봉산산면 창녕조씨문중에서 전국에 산재하여 거주하는 창녕조씨종인들의 보첩(譜牒)을 간행하기 위하여 1911년 종중규약(宗中規約)을 제정하고 보소를 설치하여 종인 모두가 효성을 다하여 추진하고 보본(報本)하고자 하는 뜻에서 제정한 규약이다.
구보계(九輔契):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일원에 거주하는 5문중(驪江李氏, 高靈申氏, 星山裵氏, 星山呂氏, 固城李氏) 종인 중 뜻을 같이하는 9명이 의기투합하여 조국광복 후 광복기념사업을 펼치기로 결의하고 1945년에 수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Ⅳ. 나가며
위와 같이 김천지역의 향안(鄕案)과 각 계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향안과 계(契)가 존재하였지만 현재까지 전해오면서 계의 서문과 좌목(座目) 절목(節目)이 보존되는 계는 대략 16개소만 전해지지만 봉산면 대동회의 경우에는 약500년 정도의 유서 깊은 계 조직이지만 안타깝게도 서문과 좌목을 분실하여 그 내용을 알 수 가 없다. 향후 계속하여 향토사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후인에게 좋은 사례들을 전파하고 좋은 문화유산으로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참고문헌
김천시사(1999년 간행, 김천시사편찬위원회)
김천의 계안(2023년 간행, 김천향토사연구회)
國譯 鑑湖集 (2016년간행, 김천문화원)
東畸遠韶遺稿(2016년간행, 영일정씨교리공파대종회)
역주본, 陽溪文集(2016년간행,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상으로 김천의 향안과 계안에 대한 고찰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