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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어(靑魚)에 대한 인식과 과메기의 어원(語源)에 대한 연구(4) / 이재봉

조진향 기자 입력 2026.01.28 11:35 수정 2026.02.16 09:13

↑↑ 사진 출처: 위키백과(https://en.wikipedia.org/wiki/Gwamegi)



조선시대 청어(靑魚)에 대한 인식과
과메기의 어원(語源)에 대한 연구(4)

이재봉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포항)


IV. 과메기의 어원

 청어라면 역시 동해에서 말린 청어가 최고다. 정약전은 자신의 저서 자산어보 린류 청어《玆山魚譜, 鱗類, 青魚》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관목청(貫目鯖) 모양은 청어와 같으며 두 눈은 뚫려서 막혀 있지 않은 것같다. 맛은 청어보다 더 좋고 건어물로 만들면 더욱 더 맛이 좋다. 그래서 무릇 ‘청어 말린 것’을 모두 ‘관목’이라 부르는 것은 마땅히 옳지 않다. 영남 바다에서 나는 것이 제일 희귀하다(貫目鯖, 狀如青魚, 兩目貫通無礙 味優於青魚, 腊之尤美, 故凡青魚之腊, 皆稱貫目, 非其實也. 產於嶺南海中, 最希貴.).”

 필자는 음운 분석과 문헌 조사를 통해서 ‘관목’의 우리말인 ‘과메기’의 어원을 찾아서 정립하고자 한다. 어떤 사물의 이름이 속명이 명확하다면 그것은 한자어가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임이 틀림없다고 본다. 그래서 기존에 전해오던 유래설들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필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과메기의 어원에 대한 기존 유래설과 문제점

1) 일본어 유래설

 일제시대에 포항에 살던 일본사람들이 과메기를 보며 거만하게 “이것이 무엇이냐(これは何ぞ)?” 라고 물었다. 그 주변에 있던 글을 좀 아시는 분이 한자로 ‘貫目’이라고 써주었다. 그랬더니 그 일본인이 ‘칸메(貫目, かんめ)’라고 읽었다. 이렇게 비롯된 것이 “칸메 → 칸메기 → 카-메기 → 과-메기 → 과메기”의 음운과정을 겪어왔다고 한다. 극소수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서 관목이라는 말이 아예 일본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니 ‘貫目’은 ‘무게’ ‘무게의 단위인 관’, ‘관록’의 뜻이 있다. 그래서 “무게도 있고 활기도 있다(目かんめもあり活気かっきもある)”라는 표현이나 ‘쇠고기 한 관(牛肉の 一貫目)’ 또는 ‘관록 있는 풍채(貫目のある風采)’ 등과 같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일본어 유래설은 진상할 청어의 무게가 큰 놈은 한 관(3.75kg) 정도가 되는 것을 보고 말린 청어를 ‘관목(貫目)’이라고 부르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동북 아시아에서 나는 태평양 청어의 최대 길이가 46cm에 평균 길이가 25cm이고 최대수명이 19년이다. 우리 청어의 최대중량기록은 없다. 

 다만 태평양 청어보다 평균적으로 길이와 수명이 비슷한 대서양 청어의 최대중량기록이 1.05kg인 것을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해볼 때 말린 청어를 한 관의 무게가 나가서 ‘관목(貫目)’이라고 불렀고 상기와 같은 음운과정을 겪으면서 오늘날 ‘과메기’로 호칭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두 가지 유래가 일제강점기에 언어사용의 주체를 일본인으로 상정하다 보니 생긴 우습고 씁쓸한 이야기이다.

2) ‘관목’ 유래설

(1) ‘관목(貫目)’ 유래설의 음운론적 문제점

 대표적인 기존 어원설이 ‘관목’ 유래설이다. 소위 두 눈을 꿰어 매달아 말렸고 그래서 처음부터 한자로 ‘관목청어(貫目靑魚)’로 불렀다는 것이 이 유래설의 핵심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관목이라고 불렀다는 기본전제가 옳다는 가정 하에서 애초 ‘관목’에서 현재 ‘과메기’에 이르는 음운변화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음운론에서 체언의 문법적 기능을 다양화하기 위해서 체언 뒤에 격어미를 더해서 그 형태를 바꾸는 것을 곡용이라고 한다. 처음에 필자는 관목에서 과메기로 바뀌는 어형변화를 곡용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포항 향토사학계의 선진인 박창원은 이것이 곡용과 다르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재봉이 왔어요”에서 ‘재봉’에 주격어미 ‘이’가 붙어서 곡용에 해당하지만 “재봉이 집이에요”에서 ‘재봉이’는 접미사가 붙은 경우이다

 정신이 번쩍 든 필자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관목’에 격어미를 붙인 ‘관목은’, ‘관목에게’, ‘관목을’ 이라는 표현은 문법적 자격에 변화가 발생했으니 곡용이다. 그러나 ‘관목’에 접미사 ‘이’가 붙여서 ‘관목이’라고 부를 때는 아무런 문법적 기능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관목’에 ‘이’를 더한 ‘관목이’가 곡용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이’ 모음역행동화를 초래한다. 

 ‘이’ 모음역행동화는 앞에 오는 후설 모음(ㅏ, ㅓ, ㅗ, ㅜ, ㅡ)이 뒤에 오는 ‘ㅣ’의 조음 위치에 닮아서 다른 성질은 유지 한 채 전설 모음(ㅔ, ㅐ, ㅚ, ㅟ)으로 바뀌는 변화이다. 다른 동화 현상과 달리 ‘이’ 모음 역행 동화는 동화음인 ‘ㅣ’와 피동화음인 후설 모음 사이에 개재 자음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개재자음은 양순음(ㅂ)이나 연구개음(ㄱ)과 같이 ‘설정성’ 자질을 가진다. ‘관목이’가 ‘관메기’로 바뀌는 게 이러한 ‘이’ 모음 역행동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명사 ‘관목’에 어미 ‘-이’가 붙어서 ‘ㅣ’ 모음역행동화로 ‘관메기’가 되었고 ‘관메기’의 첫 음절 ‘관’의 종성 자음 ‘ㄴ’이 탈락되어 ‘과:메기’로 바뀌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음 ‘ㄴ’ 탈락이 이해되지 않는다. 첫 음절 종성 자음 ‘ㄴ’이 두번째 음절 ‘메’의 초성 자음 ‘ㅁ’에 연결될 때 전혀 소리 변화가 없고 조음상 충돌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음운적으로 동일한 여건 속에 자음 ‘ㄴ’이 탈락되지 않은 예가 포항지역지명 중에 있다. 

 포항지역에서 민속학을 개척하고 지명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박창원은 기계천과 합수를 이룬 형산강의 물이 매년 우기에 몸살을 하듯 힘들게 통과하는 형산(兄山)과 제산(弟山) 사이의 협곡(峽谷)을 ‘양산메기’라고 불렀다. 이곳의 본래 지명은 양산목인데 ‘ㅣ’ 모음역행동화로 ‘양산메기’로 불리운다는 것이다. 이 낱말에서는 ‘-메기’의 앞 음절 ‘산’의 종성 자음 ‘ㄴ’이 탈락되지 않은 것이다. 자음 ‘ㄴ’과 이어진 자음 ‘ㅁ’이 조음상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각기 제 소리를 다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목’에서 ‘과메기’로 설령 음운변화를 겪어왔다고 가정해도 자음 ‘ㄴ’ 탈락현상을 음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음운론상 탈락은 한 음운이 단순히 없어지는 현상으로 음운의 수적 변화만 초래한다. 즉, 소리의 변화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관메기’와 ‘과메기’는 명확한 소리 차이가 있어서 음운 탈락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2) 문헌 속에 드러난 ’관목’ 유래설의 문제점

 이른 바 조선을 대표하는 어보(魚譜)인 「자산어보(玆山魚譜)」와 「전어지(佃漁誌)」에 실려 있는 ‘청어(靑魚)’의 내용을 살펴보자. 「전어지」에는 “향속에 관목이라 부른다(俗呼貫目)”는 구절 다음에 그 근거표현이 이어진다. “양쪽 눈이 투명하여 끈으로 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이렇게)일컫는다(謂兩目透明, 如可䋲貫也).”고 기술했다. 더 나아가서 “다만 그 고기를 엮는 법은 등을 가르지 않고 새끼줄로 청어를 엮어서 햇살에 말린다(但其鱦法, 不開背, 但以藁繩編之曝乾)”라고 그 엮어 말리는 방법을 명확하게 했다. 

 「자산어보」에는 청어를 관목청(貫目鯖)이라고 칭하는데 “그 모양이 청어와 같으며 두 눈은 뚫려서 막혀 있지 않은 것 같다(狀如青魚, 兩目貫通無礙).”로 되어 있다. 이 두 문헌에서 ‘관목(貫目)’이란 표현은 청어의 눈이 맑고 투명함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전어지」와 마찬 가지로 「오주연산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도 “관목은 건청어(乾靑魚)의 속명(俗名)이다(貫目卽乾靑魚之俗名也).”고 기재되어 있다. 속명이라는 것은 향촌인들이 사용했던 우리말 이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눈을 꿰어서 매달아 말려서 처음부터 ‘관목’이라고 칭했다는 설은 “새끼줄로 청어를 엮어서 햇살에 말린다.”는 「전어지」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

 그런데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도 “과메기는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한다. ‘목’은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의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하므로, 관목을 ‘관메기’라고 불렸는데, 그 뒤에‘ㄴ’이 탈락하면서 ‘과메기’로 부르게 되었다.”라고 소개하면서 「소천소지(笑天笑地)」라는 책을 근거로 들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동해안에 사는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중에 바닷가에서 청어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인 채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배가 고팠기에 시장기를 덜기 위해서 시험삼아 이를 맛보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맛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 선비는 과거를 보고 고향에 내려온 후에도 겨울철마다 청어를 사서 나뭇가지로 눈을 꿰어 처마에 걸어 놓고 햇살과 찬 바람에 말려서 먹었다는 것이다.

 ‘과메기’란 말이 이 선비의 이야기에서 유래했고 「소천소지(笑天笑地)」에 실렸다는 주장이 다른 곳에서도 회자되어 왔다. 상기 이야기 중에 청어는 겨울철에 동해에서 나며 말려서도 먹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어의 눈을 꿰어 말린다는 것은 필자가 직접 이 책을 구입해서 확인해보았지만 수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 가난한 선비의 이야기는 하늘과 땅을 웃게 하는 포복절도(抱腹絶倒)할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기에 「소천소지」에 기재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청어(靑魚)’와 관련해서 필자가 파악한 문헌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관목’은 향촌인이 사용했던 속명, 즉, 우리말을 음차(音借)한 한자이다.
둘째, 두 눈이 맑고 투명해서 마치 끈으로 꿸 수 있을 것 같아서 ‘관목’이라고 한다.
셋째, 청어를 건조할 때는 새끼줄로 엮어서 햇볕에 말린다.
넷째, 청어의 두 눈을 꿰어서 말려 먹었다는 ‘가난한 선비 이야기’는 「소천소지」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위와 같은 문헌분석내용(文獻分析內容)을 통해서 청어의 두 눈을 꿰어서 말렸기 때문에 ‘관목’이라고 불렀다는 유래설은 문헌적으로 근거가 없고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과메기 어원에 대한 새로운 제안

 필자는 우리말로 청어를 말리는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꽈매기 청어’로 부르던 것을 ‘관목(貫目)’이라고 음차(音借)해서 관목청어(貫目靑魚)로 공문서에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말린 청어를 ‘꽈매기’가 아닌 ‘과메기’로 쓰게 된 것은 과메기의 어원을 ‘관목’을 기준으로 음운변천과정을 거쳐왔다고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필자의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기록들이 많다. 예를 들면 「전어지」의 “새끼줄로 엮어서 햇볕에 쪼여서 말린다(但以藁繩編之曝乾).”라는 내용과 「오주연산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관목은 건청어의 속명이다(貫目卽乾靑魚之俗名也).”라는 구절이 그러한 기록들이다.

 ‘속명’이란 우리말이란 의미이니 말린 청어를 처음에는 ‘꼬아매기 청어’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동사 ‘꼬다’의 접속형인 ‘꼬아’가 동사 ‘매다’에 붙어서 ‘꼬아매다’라는 복합동사가 되는 일차 활용과정을 겪었다고 본다. 이어서 복합동사 ‘꼬아매다’에서 서술형 어미 ‘-다’는 빠지고 명사형 어미 ‘-기’가 더해져서 ‘꼬아매기’라는 명사화된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청어의 건조방식을 묘사하는 ‘꼬아매기’라는 말이 명사 ‘청어’ 앞에서 짝을 이루며 ‘꼬아매기 청어’란 복합명사가 되어서 말린 청어를 지칭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 ‘꼬아매기’의 ‘꼬아’가 ‘ㅘ’ 이중모음으로 한 음절 축약되면서 ‘꽈매기 청어’가 되었다고 본다. ‘꼬아’가 ‘꽈’로 축약되는 음운현상은 꽈배기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한글이 있었지만 글로써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에 ‘꽈매기 청어’를 음차해서 ‘관목 청어’라고 불렀을 것이다.

 꽈매기는 우리말에서 유래된 속칭이고 청어를 말리는 전통방식이 새끼줄에 엮어서 햇살에 말린다고 중요 문헌에 기재되어 있다. 두 눈을 꿰어 말려서 관목(貫目)’이라고 한다는 ‘관목’ 유래설과는 명확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삼대어보(三大魚譜) 중 하나인 「전어지(佃漁誌)」에도 “민간에서 ‘貫目’이라고 하는 것은 두 눈이 새끼줄로 꿸 수 있을 만큼 투명한 것을 말한다(俗呼貫目, 謂兩目透明, 如可䋲貫也.)” 란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관목’ 유래설을 결정적으로 부정(否定)하고 있다. 

 또 ‘관목’ 유래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제시했던 20세기 초 문헌인 「소천소지(笑天笑地)」에 가난한 선비가 청어의 눈을 꿰어 말려서 먹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필자는 말린 청어를 위 사진과 유사한 방식으로 새끼줄로 엮어서 말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 표기방식도 ‘꼬아매기’ 또는 줄여서 ‘꽈매기’로 바로잡을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V. 맺음말

 중국인들이 ‘청어(靑魚)’를 민물고기를 지칭하는데 썼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바다 물고기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중국과 일본은 청어를 비(鯡)라고 쓰고 읽을 때는 중국어로 ‘페이’로 일본어로 ‘니싱(二親)’으로 발음한다. 일본인들은 새해 첫날에 다산과 풍년을 기원하며 청어와 청어알을 먹는다. 우리도 납일(臘日)에 조상신에게 생청어를 천신하며 새해를 맞아 자손번창과 행운을 빌었다

 태평광기에 나오는 오후청(五侯鯖)은 청어와 관련된 시원적 낱말인데 화합과 별미를 상징한다. 오후(五侯)들은 서로 경쟁관계이었지만 루호를 모두 좋아했다. 루호가 자기들이 준 식재들을 청어젓갈에 전부 섞어 먹었고 이에 오후가 감화되어서 이들의 상호관계가 ‘화해’로 반전되었다. 이때부터 루호가 섞어 먹은 음식은 오후청(五侯鯖)이라 불렀고 화해의 상징이자 산해진미의 대명사가 되었다. 

 동의보감과 조선삼대어보(朝鮮三大魚譜)도 본초강목을 공통적으로 인용하면서 우리나라의 청어가 중국의 청어와 다른 바다 물고기라는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며 ‘조선어(朝鮮魚)’임을 명확하게 기술했다.

 선비들이 남긴 시 속에는 청어와 관련된 다양한 정서들을 엿볼 수 있었다. 목은(牧隱)에게는 원기를 북돋아주는 반찬이며 추사(秋史)에게는 봄을 상징하는 시절별미(時節別味)였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이관명(李觀命)은 청어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조선어(朝鮮魚)로 여겼다. 청어는 압구헌(狎鷗軒)에게는 죽어도 잊지 못하는 효의 상징이었으며 청송 진보의 어느 선비에게는 친구와 정을 깊게 해주는 술안주였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만 청어와 관련된 내용들이 558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청어는 흔했지만 왕실의 제례용품과 답례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필품이었고 동시에 국가의 중요한 세원이었다. 청어는 왕실과 사대부뿐만 아니라 궁사빈민(窮士貧民)들도 차별 없이 대했다. 또한 청어는 이순신 장군의 군대가 자급자족상태로 유지될 수 있게 도왔다. 또 오후청에서 유래된 화해의 상징성, 다산과 풍요의 상징성, 긴 수명을 가진 장수성에 밝고 푸른 희망의 상징성도 있다. 그러니 우리 조상들이 새해를 맞아 청어천신을 행했다. 청어는 흔했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귀한 물고기였다.

 사람들이 ‘과메기’를 ‘관목(貫目)’이 음운 변천을 거쳐서 된 결과물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문헌에서는 ‘관목’은 우리말에서 유래된 속칭이고, 청어를 말리는 전통방식이 새끼줄에 엮어서 햇살에 말리며, 두 눈이 새끼줄로 꿸 수 있을 만큼 투명해서 ‘관목’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과메기’는 ‘꼬아매기’에서 유래된 것이니 ‘꼬아매기’의 축약형인 ‘꽈매기’로 철자를 바로잡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며 본 논고(論考)를 맺는다.

*이 글은 필자의 논지로 다른 연구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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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조선시대 청어(靑魚)에 대한 인식과 과메기의 어원(語源)에 대한 연구를 모두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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