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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검진센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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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은 오랫동안 내시경과 CT, 조직검사 같은 침습적 검사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최근 혈액 속에 떠다니는 암세포 유전자 조각을 분석해 암의 존재 가능성과 치료반응, 재발 위험까지 추적하는 ‘액체생검(Liquid Biopsy)’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혈액검사만으로 암의 흔적을 찾아내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암 조기 진단의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60세 회사원 박모 씨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매년 건강검진도 빠지지 않고 받았고, 위내시경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체중 감소나 통증 같은 경고 신호도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예전보다 조금 쉽게 피곤하다’는 정도의 변화만 느끼고 있었다.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박 씨는 대학병원 검진센터에서 시행하는 ‘액체생검 기반 암 조기 발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혈액 속에 떠다니는 암세포 유전자 조각, 즉 순환 종양 DNA(ctDNA)를 분석해 암 발생 가능성을 확인하는 검사였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검사 보고서에는 ‘대장암 또는 췌담도계 암 가능성 신호’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씨는 처음에는 결과를 믿기 어려웠다. 기존 건강검진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교수도 “액체생검만으로 암을 확진할 수는 없다”며 추가 검사를 권유했다. 이후 시행한 대장내시경과 복부 CT 검사에서 실제로 2cm 크기의 초기 대장암이 발견됐다. 다행히 주변 혈관이나 다른 장기로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박 씨는 곧바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다시 시행한 액체생검에서는 ctDNA 신호가 사라졌다. 혈액 속에서 암세포 흔적이 더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혈액 속 암 유전자를 찾아내는 기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액체생검은 혈액 속에 존재하는 미세한 암세포 유전자 조각을 분석하는 검사다. 암세포는 성장하고 죽는 과정에서 유전자 조각을 혈액 속으로 흘려보내는데, 이를 ‘순환 종양 DNA(ctDNA)’라고 부른다.
액체생검은 ctDNA를 찾아내 암의 존재 가능성을 추정한다. 쉽게 말해 범죄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나 머리카락을 찾아내듯, 혈액속에서 암의 흔적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액체생검’이라는 이름도 기존 조직검사처럼 몸에서 조직을 떼어내지 않고 혈액 같은 체액을 이용해 검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주로 혈액을 사용하지만, 경우에 따라 소변이나 뇌척수액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동안 암을 진단하려면 내시경이나 CT, MRI 같은 영상 검사와 조직검사가 필수적이었다. 대장암은 대장내시경으로, 폐암은 CT촬영으로 확인해야 했다. 조기 발견에 중요한 검사들이지만 시간과 비용 부담이 적지 않았고, 반복 검사를 해야 하는 만큼 환자 부담도 컸다. 액체생검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암 치료와 재발 추적에도 활용
액체생검은 단순히 암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암세포의 유전자 특징을 분석해 어떤 치료제가 효과적인지 판단하는 데도 활용된다. 특히 폐암·유방암·대장암·췌장암 분야에서는 이미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액체생검이 활용되고 있다. 유방암에서는 HER2 등 특정 유전자 변이를 확인해 표적치료제 선택에 도움을 준다. 폐암에서도 EGFR 같은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운다.
또한 수술이나 항암치료 이후 혈액 속 ctDNA 수치를 반복적으로 확인해 재발 가능성을 조기에 감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장암 환자의 경우 수술 후 ctDNA가 다시 검출되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던 암세포가 활동을 재개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영상검사에서 실제 암이 보이기 전 단계에서 먼저 위험 신호를 포착하는 셈이다.
혈액암과 림프종 분야에서도 액체생검 활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혈액 속 특정 암세포 표면 단백질이나 유전자 이상을 분석해 진단과 치료 반응 평가에 이용한다.
췌장암 분야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혈액검사만으로 조기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액체생검에 대한 기대가 특히 크다.
달라지는 암 검진의 미래
액체생검의 가장 큰 장점은 간편함이다. 혈액검사만으로 시행할 수 있어 반복 검사에 따르는 부담이 적고, 암세포의 유전자 변화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몸에 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액체생검 결과만으로 암을 최종 확진할 수는 없다. 암이 매우 초기 단계이면 ctDNA 양이 너무 적어 검출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암 의심 신호가 나왔지만 실제 추가 검사에서는 암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현재 액체생검은 내시경·CT·MRI·조직검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암을 더 빨리 발견하고 치료 방향을 정하는 보조적 진단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액체생검이 앞으로 암 진단 체계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에는 건강검진에서 피 한 번만 뽑아 여러 종류의 암 발생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하는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암 진단의 흐름은 점점 더 빠르고 정밀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작은 혈액 한 방울이 있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처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검진센터 건강소식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