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대하여/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인 정호승 시인은 1959년에서 1968년까지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범어천 옆 골목에 있는 옛집에서 자랐다고 해요. 지금은 범어천에 콘크리트를 높이 쌓아 내려가 발을 담글 수 없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뛰어나가면 친구들과 멱감고 놀던 곳이 범어천이었다고 해요.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장구 치던 추억을 간직한 세대는 아마 나이가 40-50대를 넘었죠. IMF며 코로나19를 겪으며 세월이 흘러 요즘 놀이터에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골목길에 온 동네 오빠누나동생들이 어울려 잡기놀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뛰놀았습니다. 정호승 시인도 개구쟁이 시절을 범어동에서 지냈나봐요. 그 시절의 추억은 가슴 속 뭉게구름처럼 평생을 함께 하죠.
정호승 시인이 이곳에 살던 무렵에는, 현재 정호승문학관이 있는 맞은 편에 책 대본소가 있었고, 그 옆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사시던 집이었답니다. 그 집을 지나 세 번째 집이 정호승 시인이 살던 집(당시 대구시 동구 신천동 4구 895번지)이라고 해요. 담임선생님과 엄청 가까운 곳에 살아서 좋았을까요? 불편했을까요? 저는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으셔서 좋았을 거 같아요.
정호승 시인의 집은 외삼촌댁 능금과수원과 연해 있었는데 외삼촌댁 가까이에서 살았나봐요. 범어천 주변으로 배추밭이 있고, 구멍가게와 가죽공장을 하는 친구의 집도 있고, 현재 대구중앙고등학교가 예전에는 중앙상업고등학교였을 때였어요. 천변 둑에는 다닥다닥 작은 집들이 붙어있었고 좁은 골목길이 나있었죠.
시인은 이곳에서 삼덕초등학교, 계성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시인으로서 꿈을 키웠답니다.
정호승 시인은 "나는 범어천에서 자연과 인간과 문학을 배웠다. 범어천은 내 문학의 고향이고, 내 시의 모태"라고 말했어요. 정호승 시인이 중학교 2학년 국어 숙제 시간에 쓴 시 '자갈밭에서'는 범어천에서 자란 소년의 마음을 나타냈다고 하네요.
대구시 수성구와 수성문화재단은 이곳에서 자란 정호승 시인이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성장한 범어천 옆에 시인의 문학관을 건립해 그의 문학정신과 시의 향기를 나누고 있어요.
정호승문학관 옆 대구중앙고등학교 담장을 끼고 '시가 흐르는 범어천'이라는 주제로 정호승 시인의 시를 범어천을 따라 걸으며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최근에 데크로드를 조성했어요.
범어천은 1972년 직강공사를 시작했고, 2013년 생태복원사업을 시작해 2015년 마무리된 후 지속적으로 가꾸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어요.
최근 발표된 2026 만해대상 문예부문에 정호승 시인이 선정되셨어요.
정호승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라며 한 달에 한 번 정호승문학관에 들러 지역주민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1950년에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당선했습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 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등이 있고, 시선집<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가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조지아어, 몽골어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동시집 <참새>,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등이 있습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올해 만해문예대상에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