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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인터뷰

일선당 김상호 훈장 - 청천서원에서 향도가 꽃필 때까지(2)

조진향 기자 입력 2019.11.01 06:27 수정 2019.11.06 15:01

1편에 이어 

이에 대한 해법으로 ‘중정사상’을 꼽았다. 즉, 선도 악도 아닌 중간, 강과 약의 중간에 서서 세상을 보는 것이 중도사상이라고 했다. 이 사상은 선으로 악을 알고, 악을 보고 선이 좋다는 것을 아는 이치로 악을 맛봐야 선을 아는 원리라고 했다.

“뜨거운 걸 데어봐야 차가운 걸 알고, 차가운 걸 데어봐야 뜨거운 걸 안다”며 “거기서 지혜가 비롯돼요. 천하의 보검은 뜨거운 불길에 들어갔다가 찬물에 들어가기를 반복해야 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로 악한 길과 선한 길을 다 다녀봐야 중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김 훈장은 “외할아버지가 도산서원 원장을 오래 지내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전통이 자연스레 몸에 베였다”며 성주에 주소와 본적을 옮겨와 제2의 고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심산 선생은 13살 무렵 부친과 백부를 따라 부산에 다니러 가서 앉은뱅이로 계신 모습을 한번 뵈었다”며 “어른들이 독립운동하시던 어른이라고 해서 절을 하고 인사를 드린 기억이 남아있다”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의 뿌리가 청천서당 즉, ‘성명학교’로 그 이름이 여기서부터 시작됐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전문의원들이 문화재 조사차 다니러 왔을때 문화재 관리를 소홀히 한다고 호통을 쳤다고. (청천서당은 청천서원에서 골목길을 내려가 우측으로 50여m 가다보면 있다) 

특히, 청천서원 경정각에 보관돼 있는 속자치통감강목 판목은 차후 국보로 지정받기 위해 전문위원을 초빙해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판목은 내각판이며 어명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문화유산임에도 도둑이 들어 자물쇠를 끊는데도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않는다며 씁쓸해 했다.

또한 담에 올린 기와가 담 안쪽으로 들어와 비가 오면 기둥 쪽으로 물이 떨어지는데 이는 문화재로써 규격에 미달된다는 평가다. 

그와 함께 판목을 보관하기 위한 환풍구도 작고 숫자도 부족하다며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는 통풍구가 넓어 바람이 마음대로 드나든다고 했다.

또한 정경각의 위치도 위폐가 모셔진 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소유이지 개인의 소유가 아니에요.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고 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며 정경각의 갈라진 틈을 손으로 가리켰다.





앞으로 청천서원은 문화교실과 문화광장으로 각 부문별 연구실을 두고 현대식으로 개조할 계획으로 강좌는 청천서원의 강당과 청천서

당(성명학교), 심산 선생 종가사랑채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인근 대구, 칠곡, 왜관, 북삼, 김천, 구미에서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호 훈장은 “지금까지 구도정신으로 살아왔어요. 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이치를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다”며 젊은이들에게 “예전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들이 살아온 삶 즉, 지나간 과거를 잘 고찰해서 미래를 개척해보라”고 조언했다. 

“아무리 생활이 바빠도 과거를 더듬을 수 있다”며 “생각하지 않으면 깨우침이 오지 않아요. 성냥불을 그리지 않으면 불이 일어나지 않듯, 마음으로부터 이것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일어나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 스스로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 것이냐하는 인생에 관심을 가져야 인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주 군민들에게는 “옛 성주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며 “성주는 고려때 안동보다도 먼저 일어나 훨씬 앞섰다”며 “옛것을 찾아 회복하는 것, 성주라는 이름 자체가 하늘에서 점지한 대길지로 옛모습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동강·심산 양위 민족정신 선양회는 두 선생의 애국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개개인의 교양을 배우고, 나아가 민족을 발전시키고, 후세들을 기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전통문화의 구심점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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