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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를 지키는 단결된 여성의 힘, 여성예비군 안보견학

조진향 기자 입력 2019.11.04 09:14 수정 2020.03.10 06:36

성주여성예비군은 지난 1일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통영 일대로 안보 견학을 다녀왔다.


이 자리에 이만희 성주예비군 지역대장, 정교부 기동대장, 김경분 소대장, 홍금자 부대장과 회원 20여명이 참석했으며,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과 사상대립, 폭동, 귀환과 송환 과정을 체험했다.

이만희 지역대장은 “여성예비군 창설 10주년을 맞아 전반기에는 창설기념식을 후반기에는 성주군의 지원을 받아 안보견학을 하게 됐다”며 “태풍의 영향으로 당초 10월 5일에서 연기되긴 했지만 이 행사를 통해 여성예비군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단합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김경분 소대장은 “안보견학을 지원해준 분들과 참석한 회원들께 감사드린다”며 “오늘 행사를 통해 안보의식을 되새기고, 여성예비군의 단결된 힘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솔선수범하겠다”고 전했다.

성주여성예비군은 총 35명의 회원들이 군부대 행사지원과 환경정화활동, 독거노인 돌보미 및 지역사회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이날 4D상영관에서는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포로들이 이념 대립과 갈등으로 안타깝게 희생되는 내용이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생포된 포로들은 1951년 2월부터 부산과 거제도 등지에 수용됐으며 이 가운데 북한군 여성포로 550명(1952년 기준)도 어린이들(20명)과 함께 수용됐다.


이들은 간호활동에 동원되기도 하고, 제네바 제3협약에 따라 보호·관리됐다고는 하지만 성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거제포로 수용소에 수용된 총 7천900명의 반공포로들은 유엔군 측으로 전향(7,604명), 공산군 측으로 귀환(188명), 탈출 및 행방불명(11명), 인도군의 관리 중 사망(23명)하거나 인도로 이송(74명)됐다. 또 친공포로(총 335명)는 유엔군 측으로 귀환(8명), 인도로 이송(2명), 공산군 측으로 전향(325명) 했다.

포로수용소에서는 송환과 전향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포로들 사이에 극심한 폭동과 갈등이 벌어져 1952년 5월 7일 돗드 소장 납치사건과 1952년 10월 1일 제주도 사건 등의 대규모 유혈 진압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측 통계자료에 따르면 1950년 8월부터 1952년 12월까지 약 1만명의 포로들이 수용소내 폭력과 갈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포로들은 1953년 4월부터 송환되기 시작했으며 북한이나 남한, 중국과 대만, 중립국으로 갔고, 1953년 9월 기준, 북한 포로수용소의 국군 및 유엔군 포로들은 자국으로 귀환하거나 중립국을 선택했으나 상당수가 귀환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과 이념갈등의 광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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