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기억
박종순
머리에 나뭇가지를 꽂고 산에서 내려와 고개를 푹 숙이고 냇가에서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것이 인민군 같았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와 동네에 알렸고, 지서에서 나와 동민들과 함께 잡고보니 미쳐 못 간 인민군 패잔병이다. 그때는 칭찬을 받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각하니 누구의 귀한 아들이고 동족인데 싶어 가슴이 아린다.
그러고 얼마있지 않아 싸이렌이 울리더니 전쟁이 끝났다며 집으로 간다고들 좋아하며 산을 넘고 벼가 누렇게 익은 황금 들녘을 걷고 또 걸으며 오는데 앞서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늦어지는데 논두렁에 국군 시신, 인민군 시신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어 논두렁에 누운 시신은 타넘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둘러서 가기도하고, 아이들은 울고, 피난 중에 강제로 잡혀간 아들을 둔 사람들은 행여 우리 아들은 아닌가하고 타넘어가며 살핀다. 그 광경을 본 피난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집에는 군에 간 사람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보다 괜히 미안했다. 수도원 쯤 오니 왜관이 없어지고 하늘은 푸른데 땅에는 집들이 불에 타 검은 숯덩이들이 꽉 차 있었다. 벽돌로 지은 관공서만 그을린 채 몇 채 있을 뿐이다. 걸음을 재촉해 집에 와 보니 어디쯤이 우리집인지 알수가 없었는데 다행인 것은 꽃밭에 바위가 까맣게 서 있고, 그 옆에 고목이 된 석류나무가 타다만 밑둥이 조금 남아 있어 알 수 있었다.
목욕탕에는 시멘트를 발라 만든 아궁이에 걸린 무쇠솥이 빨갛게 녹슨 채 빗물이 고여 있었다. 온 이웃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어 우리집을 기점으로 자기 집들을 찾아가며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들렸다.
우리집은 군 농협 옆이라 창고에 타고 남은 숯기둥을 끌고와 기둥을 세우고 함석을 주워와서 덮고 이슬을 피하게 하고 날이 새도록 기다렸다. 생천 처음 본 코큰 미군과 검둥이들이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어제 오다가 수도원 밑 옹기굽는 집이 불에 타지 않았으니 방 하나 빌리러 가셨다. 아버지는 농협 마당에 미군들이 있어 가시더니 드럼통 하나를 얻어오셨다. 거기에다 메고 갔던 봇짐을 넣었고 조금있다 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오셨다.
그 집에 가서 불러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 방을 들여다보니 벽장 안에서 군화를 신은 사람이 보여 엄마는? 하고 물으니 대답이 없어 흔들어보니 국군 한사람이 죽어 있었는데 눈을 뜨고 있었다며 바닥에 쓰러지셨고, 아버지가 피난봇짐에서 약을 꺼내 어머니에게 먹였고 시간이 지나자 차츰 나아지셨다.
불난 터에 숯은 많아 모두들 주워와 밥을 해먹었다. 카투사들이 찾아와 밥과 자기들의 양식과 바꿔 먹자고 했다. 나는 바꾼 음식이 더 좋았다. 배급 상자도 가져오고 캔을 먹고나면 깡통은 밥그릇 찬그릇이 되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미군들의 행폐가 심해 밤만 되면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진동을 하고, 날이 세면 남자들과 아이들의 기막힌 통곡이 하늘을 찔렀다. 여자들이 잡혀가고 어떤 집은 가족이 보는 앞에서 한놈은 총을 겨누고 한놈씩 번갈아가며 강간을 하고 떠났다한다. 우리집에는 함석을 주워다가 앞뒤로 깔아 놓았다. 군화발로 밟으면 그 소리 듣고 어머니는 드럼통 속으로 들어가 숨으셨다.
그 와중에도 몇일이 되니까 콩나물 사려, 두부 사려, 이고 지고 장사꾼이 생기고 검은 땅 위에서 고무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놀다가 친구와 손잡고 화장실에 갔는데 미군이 총을 메고 가마니를 들치고 보니 어린 아이들이니까 그냥 돌아갔다. 너무 무서워서 울고 가는데 또 한 아이가 울며 돌아다닌다. 몇 일 전에 미군 총에 맞아 아버지는 죽고 엄마는 끌려간 집 아이다.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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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순 칠곡도서관 난설문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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