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익형 관식과 모관을 살펴보면, 신라식 관식은 전식 양쪽에 익형 입식이 결합된 조익형 관식이다. 금은제 관식이 부착된 황남대총 남분이 신라식 조익형 관식의 완비 시점이다. 이후 황남대총 북분 관식에 은제이며 눈모양 무늬가 표출된 새로운 형식이 등장하며 이 형식은 신라 지역 사회에서 넓게 쓰였다. 모관은 백화수피와 귀금속제가 함께 쓰이고 황남대총 남분에 같은 형태와 기법으로 만든 금은제 원정형 모관이 부장됐다. 조익형 관식과 함께 황남대총 남분 시점이 신라식 모관 완비기임을 보여 주며, 금관총, 천마총 금제 모관으로 갈수록 의장성이 한층 고조된다.
신라 귀걸이 구조는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신라만의 독자적 특색이 있다. 5세기 중반 황남대총 북분에 고구려산 태환이식이 부장됐는데, 귀걸이 각 부분을 땜질한 일체식 구조가 고구려 계열 기술이며, 신라권 출토품 중 귀걸이 연결고리, 드림이 일체로 부착된 의성 탑리Ⅰ곽, 천마총(목곽 상부), 계림로 14호 귀걸이가 고구려 기술이 신라화한 사례이다.
신라의 독자적 고안 귀걸이로는 세환 귀걸이 원통식 중간 장식과 태환 귀걸이 구체-반구체 조합식 귀걸이를 들 수 있다. 원통식 중간 장식은 반구형 상하 장식에 원판을 끼운 구조로 초기 간소한 형식이 황남대총 북분에 부장돼 점차 장식성이 고조되어 금관총, 천마총, 보문동 고분 기간에 유행한 주력 장식이다. 태환 귀걸이 구체-반구체 조합식 귀걸이는 구체 아래 반구체를 추가한 의장으로 초기형은 황오리 14호Ⅰ곽 태환·세환 귀걸이에서 사용됐고, 다음 황남대총 남·북분 태환이식 전용 의장으로 완비되며, 금관총, 천마총, 보문동 합장분 태환이식 순으로 발달한다.
귀걸이는 복식 구성품으로 신체(귀)에 부착돼 사용하며, 귀걸이 착용 실례는 신라 석조물과 회화 자료에서 추측할 수 있다. 경주 서악동 문비석의 신장상, 석굴암 본존불 둘레 부조상 가운데 십일면관음보살상, 천부상과 보살상, 영주시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의 연도 서벽에 그려진 역사상에도 귀걸이 장식이 그려져 있다.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반 경주 인왕동 668-2번지 9호 석곽묘에 백제산 금제 드리개가 출토됐다. 똑같이 생긴 드리개가 월성 해자 라구역에서도 수습된 바 있다. 드리개 중간식과 드림을 잇는 금실을 휘감아 매듭짓는 마감법이 백제 기술이다. 두 드리개는 공구체를 사용했으며, 같은 시기 등장한 신라 공구체식 귀걸이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6세기 초엽 황남동 106-3번지 귀걸이는 무령왕 귀걸이 제작법과 같으며, 십자 모양 장식판을 상하 대칭 접합해 만든 방식으로 신라권 계보를 찾기 어렵고, 금관총, 천마총 기간 신라와 백제 교류 과정에서 유입된 백제 기술이 신라화한 사례로 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신라 금속제 팔찌는 4세기 중반 포항 마산리 149-4번지 적석목곽묘의 청동 무문 팔찌다. 5세기 초엽 경산 임당 7A호 금동제 무문 팔찌가 그 뒤를 이으며, 황남대총 북분에는 다양한 기법의 중실·중공식 팔찌가 사용돼 신라식 팔찌 기본형이 갖춰진다. 이후 장식성이 발달된 팔찌가 금관총, 천마총, 보문동 합장분에 부장된다. 노서동 215번지 금제 팔찌는 백제 계열 용 문양이 들어간 예로, 백제 무령왕비 다리작명 은제 팔찌 용 무늬와 연결된다. 신라와 백제 팔찌 착용법은 차이가 있는데, 백제인은 왼손에 은제 팔찌 1쌍, 오른손에 금제 팔찌 1쌍처럼 한 손에 같은 종류 팔찌를 착용하고, 신라인은 좌우에 금제·은제·구슬류 팔찌를 함께 착용하는 복식을 보인다.
신라 반지는 윗면을 마름모꼴로 살짝 넓히고 이곳에 장식을 넣는다. 신라 반지는 화형(꽃형, 황남대총 남분, 포항 냉수리 고분), 각목 선문(금관총), 각목 능형문(금령총), 무문 반지로 나뉜다. 그중 화형반지는 금 알갱이와 청색 유리를 감싸 높은 장식성을 보여준다. 신라식 반지의 표지 유물이며, 황남대총 남분 기간에 기본 의장이 완비됐다. 복식으로써 신라 반지는 여러 개를 부장하는 특징이 있으며, 반지 4-8점 이상을 손가락에 각각 착용한 경우가 많다.
신라 귀금속제 허리띠 장식은 가장 긴 시간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에 등장해 통일신라까지 신라 복식의 주요 구성품이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형식을 통해 외부 허리띠 문화를 수용하고 다시 신라화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투조 엽문, 용문 과판식 허리띠 장식은 외부 세력의 영향력이 작용한 사례로, 가장 오래된 신라 귀금속 허리띠 장식은 쪽샘 L17호 출토 중원식 금동제 투조 용문 과판이다. 다음으로 5세기 전반 중국 삼연 계통이 신라화한 경산 조영동 EⅢ-2호, 울산 하삼정 고분군 나 석곽묘 115호에서 출토되었다. 황남대총 남분에는 고구려 계통의 금동제 투조 용문 과판이 부장됐다.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전반에 중국, 고구려 문물이 직간접적으로 수용된 신라식 허리띠 장식이 등장했다.
투조 삼엽문 과판식 허리띠 장식은 황남대총 남분에 다수 부장됐다. 이는 신라 형식이 완비됨을 보여주며 금허리띠는 금관과 함께 황남대총 북분,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에 부장됐으며, 신라 최상위층의 복식으로 사용된다. 그 하위는 은제 투조식 삼엽문 허리띠 장식이 자리한다.
누암리형 및 황룡사형 허리띠는 6세기 전반부터 7세기 중반 새로운 허리띠 장식을 보여준다. 누암리형은 신라 전통적 요소에 백제적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경주 보문동 고분에는 고식 삼엽문 과판과 신식 누암리 과판이 함께 부장돼 과도기적 변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7세기 누암리형은 다시 황룡사형 허리띠 장식으로 교체되는데 종래와 다른 청동제 주조의 제작 방식 변화와 부품 형태, 문양, 착장 방식이 전반적으로 달라진다. 중국 수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차이점이 커서 신라인의 창안으로 보기도 한다.
통일신라형 허리띠 장식은 당나라식 또는 통일신라형으로 불리는 띠장식이 사용된다. 과판과 띠끝장식 파편이 한 덩어리로 주조된 상태가 남아 있다. 이 기간 신라 경주지역에서 통일신라형 과판 생산과 유통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며, 통일신라 전역으로 확산된 후 동제와 철제 비중이 늘어나는 퇴조기 양상을 보인다.
신라 복식에서 금동신발은 독특한 역할을 한다. 다른 귀금속제 장신구는 착용이 가능하지만 금동신발은 충격에 취약한 귀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바닥에 영락을 촘촘히 매달아 애초에 보행과 착용을 의도하지 않은 구조이다. 즉 장례에 쓰일 목적으로 준비된 복식이다. 황남대총 남분 시기 신라식 금동신발 의장이 완비된다. 금동신에 ‘ㅗㅜ’ 무늬를 투조하고 영락을 과도하게 부착한 것이 신라 금동신의 특징이다. 이후 무늬가 생략된 형식, 금동신 앞이 살짝 솟은 형식으로 변화한다. 금동신발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공통으로 쓰이나 각 나라의 의장마다 다르다. 고구려 금동신은 바닥에 못장식이 박혔다. 백제나 신라는 서로 닮은 외형이나 백제 금동신은 ‘ㅗㅗ’문양, 신라 금동신은 ‘ㅗㅜ’문양이 사용된다. 금령총 옆 식리총에서는 백제 금동신발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백제에서 만들어져 신라와 교류하면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쌍두화, 가르빙가, 연꽃무늬 등이 화려하다.
신라 귀금속 장신구 문화와 흐름을 살펴보면, 현존하는 신라 귀금속 장신구는 금·은·금동으로 제작한 대관, 모관, 관식, 귀걸이, 반지와 팔찌, 허리띠 장식, 금동신발이 주종을 이룬다. 고구려, 백제, 가야, 중국, 일본 장신구와는 뚜렷이 구별되며, 끊임없는 외래 문물 수용과 신라화를 통해 신라 고유의 신라식 양식이 성립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라 왕경의 장신구는 주변 여러지역 집단에 깊숙이 파급되었고, 성산동 고분군 집단에도 사용되었다. 관식, 귀걸이, 반지, 팔찌, 허리띠 장식이 발굴되어 성주권 유력 집단인 성산동 고분군 조영자들과 경주 집단의 위세품 교환 체계가 가동된 결과로 보인다.
48호분의 재발굴을 통해서도 보였듯이 유적의 발굴은 새로운 유물의 등장과 또 다른 해석을 불러온다.성주 성산동 고분군의 발굴은 종료되지 않았고, 앞으로 새로운 자료가 발굴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무슨 재료로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당시의 시대상은 어떠했을지 상상해보고, 유물이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알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번 주말 가까운 박물관을 찾아보는 건 어떠세요?
♣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02-2077-9000)
♣ 국립경주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054-740-7500)
♣ 국립대구박물관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 (053-768-6051)
♣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행소박물관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053-580-6992)
♣성주 성산동고분군 전시관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4길 37 (054-930-8385)
이상으로 5월 14일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에서 진행된 2025 군민참여강좌 세 번째 강의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수정 가능합니다(이메일 joy8246@naver.com). 내용과 관련된 참고문헌은 싣지 않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