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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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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풀어본 한개마을 이야기(3)
이기백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성주)
Ⅶ. 한개마을의 명당 풀이
2. 마을의 형세 진단
3) 백호(白虎)의 형세(形勢)
영취산의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는 水형산으로 良寅용이다.
할미바위 뒤(丑方)에서 응기하여 잠시 멈추었다가 급히 떨어져 성봉하면서 분맥되어 용맥의 곳곳에 명당을 주었다. 마을의 우측 북~북서쪽의 용맥으로 다소 높게 보이나 강풍과 찬바람을 막아주며 마을을 감싸고 있다. 용맥의 마지막 봉이 辛方에서 다소 높게 솟아 끝은 巽巳(손사)향으로 마을 앞 제방을 향해 멈추었다.
주산인 영취산에서 백호등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오면서 성봉된 차례로 편의상 순서를 정하고 용맥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봉에서 분맥된 용맥은 마을의 주맥으로 마을의 丑方에서 성봉하여 癸丑용으로 내려오다 左施하여 良寅으로 한주종택쪽으로 내려왔다.
⋅제2봉에서 분맥된 용맥은 마을의 癸方에서 성봉하여 불뫼등으로 내려오는 癸丑용으로 마을의 내백호를 이루며 서륜재에서 멈췄다.
⋅제3봉에서 분맥된 용맥은 마을의 子方에서 성봉하여 묘소등으로 내려와 산진처에서 평지 밭을 이루고 있다.
⋅제4봉에서 분맥된 용맥은 마을의 壬方에서 성봉하여 내려와 여동서당에서 멈추었다.
⋅제5봉은 여동서당 뒷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백호등의 마지막 봉(응와공신도비 뒷산)으로 마을의 辛方에서 성봉한 후 巽巳방으로 우선하여 마을을 안고 맞은편 청룡등을 향해 멈추었다.
외 백호는 영취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북쪽으로 우선하여 다시 서쪽으로 내려오다가 명산마을 이루고 삼봉을 향해 멈췄다.(비주하는 형세)
내백호인 불뫼등은 마을의 서녘 윗막을 포용하며 북풍을 막아주고 있으나 용맥이 짧아 마을 전체를 감싸 안지 못하고 있다.
백호등이 다소 높게 내려오면서 백천을 따라 북쪽(초전)에서 불어오는 겨울철 세찬 바람을 막아 마을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특히 백호등 용맥의 끝이 마을의 庚方에서 巽巳향으로 청룡등을 마주보며 마을 앞에 축조된 제방을 향해 멈춰 서 있는 것은 마을 내의 대명당의 기를 보호하기 위함인듯 하다.
백호등의 끝자락 산진처에는 응와공 신도비가 丑坐 未向으로 건립되어 하천 건너 매롱샘의 우측산(자문성·노적봉)을 향해 있다.
4) 물의 흐름(得破)
풍수에서 물은 흔히 부(富) 즉 재물과 돈으로 여겨 물의 맑고 탁함 량의 많고 적음, 유속의 빠름과 느림, 물의 깊고 얕음, 수로폭의 넓고 좁음, 흐르는 모습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여 후손들의 부의 양상이나 정도 길흉을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하곤 했다. 특히 이기풍수들은 물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방향과 형상을 중시 여겨 88향법에 맞추어 명당의 좌향과 위치를 정라곤 했다.
옛날 한개마을에 터를 잡았을 때는 동쪽(청룡등쪽)의 큰 도랑물이 乙辰방에서 득하여 직수로 현재 고목나무가 서있는 丙午방으로 바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을에 좋지않은 일들이 자주 생기자 마을 내에서 함께 같이 살고 있던 도촌, 하촌, 동촌, 남계 고향파의 후손들이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한개마을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을에 혼란이 오고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생기자 마을 웃막에 살고 계시든 독자가(銓熙, 30世, 숙파) 한분이 庚申년(1860) 대홍수로 피해를 본 후 사비로 현재의 제방을 축조하면서 물길을 마을 向(앞)을 지나 庚酉방으로 나가게 돌려 내었다고 한다. 그 이후 마을 내에는 명당의 좋은 기운이 오래 머물러 있게 되어 부와 귀가쌍전하는 명당 길지가 되었다.
현재 마을 내의 소하천(도랑) 물은 동쪽 乙辰방에서 득하여 左水右到(좌수우도)로 마을을 환포한 후 서쪽 마을 입구 庚酉방으로 흘러나가고,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외 명당 물인 이천과 백천의 합수물은 서쪽 庚方에서 동쪽 丁方으로 右水左到(우수좌도)로 흘러가 선남면과 용암 후포들을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되고 있다. 한개마을의 물은 역수국이다. 예로부터 풍수사들은 영택지의 명당터를 구할 때 역수국의 물의 형태를 귀히 선호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坐向이 良坐(양좌) 坤向(곤향)이므로
⋅내수는 乙辰得 庚酉破(左水右到): 進神水法으로 文庫淸水로 부귀고 수복 쌍전하는 吉破라 하겠다.
⋅외수는 庚得 丁破(右水左到): 進神水法으로 借庫淸水 自生向이 되어 부귀쌍전, 인정대왕하는 吉破라 하겠다.
⋅특히 국세가 크고 내 외수가 逆水인 대명당지로 양택의 길지이다.
5) 안산(案山)의 모양
마을의 가장 가까운 안산은 백천내를 건너 선남면 성원1리(황신)의 북쪽에 나지막하게 보이는 坤方의 일강정(一江亭)의 뒷산이다.(일명 분통골) 이 산의 모양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주산 영취산을 옥녀산발형으로 볼 때는 머리 빗은 빗 모양으로 보이나 마을의 주맥인 한주종택에서 볼 때는 아미사, 또는 어대사로 보이기도 한다. 가끔 어떤 풍수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으로 보기도 한다. 이와 같이 물형을 위주로 하는 풍수사는 보는 위치와 선입감 주관성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옛날 그 산의 앞쪽(매롱샘쪽)에는 깊은 소(웅덩이)가 있었고, 용머리 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 정월대보름날 사람들이 그곳에 촛불을 켜놓고 자식들의 건강을 비는 용왕제를 올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전거 도로 개설로 부근이 훼손되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 뒤에는 성산 정상에서 우측 성주읍 쪽으로 내려온 하부에 위치한 일명 황신고개(재)가 U자 모양으로 성원1라(황신) 뒷산으로 연결되어 있고, 뒤에는 중거동 마을로 넘어가는 일명 구리티 고개(재)가 U자 모양을 하며 좌우에 펼쳐져 있어 산의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춤을 치며 다가오는 듯한 형상과 같이 보인다. 그 뒤 마지막 곤방에 우뚝 솟은 성암산(聖岩山, 556M, 용암면 중거리 정상)이 마을의 주 안산이다. 여러 산들 너머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水형산으로 마을의 어느 곳에서 보나 같은 모양으로 형상이 단정하게 보인다.
Ⅷ. 마을 명당의 종합 풀이
주산인 영취산(331m)이 우뚝 솟아 북풍을 막아주고 주산의 용맥이 良坐 坤向으로 내려와 청룡과 백호의 양팔을 벌려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어 기상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지형은 배산임수 형상을 갖춘 전저 후 고로 배수가 잘되며 넓고 햇볕 쪼임이 좋아 따스하다. 마을의 내수물은 左水右到하여 마을 앞 庚酉方으로 흘러 文庫消水(문고소수)의 吉破(길파)이고 외수 역시 이천 백천의 합수천이 서에서 동으로 우수좌도(右水左到)하여 丁未方으로 흐르고 있어 차고소수(借庫消水) 자생향(自生向)으로 길파(吉破)이다. 즉 명당에서 보면 내수와 외수가 서로 역수하는 吉破로 대명당지이다.
안산은 형세도 다양(아미사, 빗, 어대사, 용)하여 마치 학이 날개를 펼쳐 춤추며 다가오듯 하고 坤 甲方의 주 안산인 성암봉은 마을 어느 곳에서 보나 형세가 단정하여 가옥의 향으로 삼았으며 木형산으로 吉格이다.
주산 옥녀 산발형에 걸맞게 청룡과 백호가 내려오면서 성봉과 기복을 거듭한 산진처 곳곳 명당 길지에 재사와 서당, 정사가 자리하고 있음은 눈여겨볼 일이다. 특히 명당의 형세가 모자란 곳은 비보(裨補)로 채워 보완코자 노력하였다. 이 모든 것이 합해져 영남에서 제일가는 양택의 길지가 되어 6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를 이어 번성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개마을 탐방 자료, 풍수로 풀어본 한개마을 이야기 중 발췌(성주문화원 부원장, 향토사연구소 소장 이윤식)
이상으로 풍수로 풀어본 한개마을 이야기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