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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실마을(사진 경상북도 영양군청 누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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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빛고을 일월면 주곡2리 감복동 이야기(2)
박원양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영양)
Ⅳ. 감복동(甘伏洞)에는 물과 땅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
감복동은 물과 땅을 다스리는 신이 사는 마실로 흥림산 동쪽에 위치하며 흥림산 서쪽에서 강이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어 명당이 있다고 하며 물을 숭배하여 엎드려 소원을 기원한다는 이미지가 지명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일월산(日月山)에서 남쪽으로 분기된 지맥에 흥림산이 있으며 영양군청 뒷산으로 영양읍에서는 한박산, 함박산으로 부르고 청기면 소재지에서는 대박산으로 일월면 주곡리 주실에서는 흥림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흥림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감복동마실, 서쪽에 라월동천 나방마실이, 남쪽에는 영양군청이 있는 영양읍 동부리와 서부리마실, 북쪽에는 청기면 새뉘(새 눈)마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감복동마실에는 물과 땅을 다스리는 신(申)이 있습니다.
주희가 노래한 무이산 시(詩)를 살펴 보면
산에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못하고 山無水不秀
물은 산이 없으면 깨끗하지 못하네 水無山不淸
골짜기 골자기마다 산이 감돌아 들고 曲曲山回轉
봉우리마다 물이 감돌아 흐르네. 峰峰水包流
흥림산을 감복천이 감돌아 흐르는 동쪽마을이 감복마실은 물과 땅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잘 보존하여 왔습니다. 땅신(土神)이 두루보살펴 준다고 믿어 오고 있습니다.
Ⅴ. 흥림정사 이야기
석계 이시명 선생의 셋째 아들인 항재 이숭일이 흥림산 산록에 흥림정사를 건립하여 유학을 가르쳤습니다. 주실마을 등 각처에서 이곳에 와서 학문을 배웠습니다.(*항재문집에 흥림산 유산기에 기록이 있음) 많은 유학자 선비를 배출하였습니다. 작금에는 사찰을 건립 중에 있습니다.
Ⅵ. 황룡이 사는 황룡기마실이 남서쪽에 있다
감복동마실 서남쪽에는 황룡이 사는 황룡기(黃龍基)마실이 있습니다. 황룡은 영양군청 소재지인 영양읍 중앙에 황룡천을 이루어 물이 반변천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Ⅶ. 새뉘(새 눈)마실이야기
새의 눈을 상징하는 새뉘(새 눈)마실이 서북쪽에 있어서 기복신앙에서 발월하는 소원을 새들이 하늘에 전달하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Ⅷ. 주실의 남쪽마실로서 수구역할을 한다
주실마실 동쪽에 매를 상징하는 매봉, 남동쪽에 새미골, 서쪽에 성지골, 달밭골이 있는데 감복마실과 연접해 있습니다.
Ⅸ. 쉰섬지기 이야기
감복마실 남쪽의 산에 좁쌀을 쉰섬이나 생산할 수 있는 분지가 있으며 옆에는 달구터(닭이 사는 터)가 있는 등 살기좋은 곳이라고 믿도록하는 분지의 땅이 있습니다.
Ⅹ. 항재 이숭일(李徽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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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재선생문집(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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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재(恒齋) 이숭일(1631~1698년) 선생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응중(應中), 호는 항재(恒齋). 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추증된 이시명(李時明)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로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이숭일은 아버지와 형 이휘일(李徽逸)·이현일(李玄逸)을 비롯하여 부덕이 출중하였던 어머니를 둔 훌륭한 교육적 환경에서 성장하여 뒤에 학자로 대성하기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부터 과거공부에는 뜻을 두지 않고, 경학 연구와 심성 수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1689년(숙종 15)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를 거쳐 의령현감에 제수되자, 자신의 포부를 펼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흔쾌히 받아들여 부임하였다.
이숭일은 모든 행정을 백성을 위하는 방편으로 수립하고, 민폐를 혁신시켜 고을사람들에게 ‘이불자(李佛子)’라 불렸다. 한편, 교육을 통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권장하여 그 영향이 이웃 고을에까지 미쳤으며, 시국의 변동으로 인하여 2년 뒤 고향으로 돌아가 후진 양성과 저술로 여생을 마쳤다.
이숭일의 저술 중 「존재형안성유씨우선설변후(存齋兄安城劉氏右旋說辨後)」를 비롯한 몇몇 작품이 『동유학안(東儒學案)』 도산사숙학안조(陶山私淑學案條)에 채록되어 있다. 저서로는 『항재문집(恒齋文集)』 8권 4책이 있다.
이상으로 꽃빛고을 일월면 주곡2리 감복동 이야기를 모두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