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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성주임진전쟁 의병기림예술제, 4년의 여행 도남재

조진향 기자 입력 2020.06.22 22:32 수정 2020.06.25 15:50


경북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덕암전통문화예술연구회와 성주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가 주관한 ‘4년의 여행 도남재, 성주임진전쟁 의병기림예술제’가 지난 20일 대가면 도남재에서 열렸다.

경상북도가 후원한 이번 공연은 2020년 덕암전통문화예술연구회 경북문화재단 지원선정공연으로 임진전쟁 당시 도남재에서 창의된 성주지역 문중 의병들의 활약상을 시조창, 판소리, 시조합창 등으로 표현한 전통예술콘서트다.

이영희 덕암전통문화예술연구회 대표는 “성주군에는 성주를 기반으로 한 성씨들이 무려 28성관에 달하며, 성주임진전쟁 의병기림예술제는 4년간의 여정으로 각 문중 의병들의 활약상을 전통예술과 접목시켜 지역문화 발전과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여병동 선생의 대금독주 ‘청성곡’이 대숲에 이는 바람처럼 맑고 고요하게 첫무대를 열었다. ‘한산도가’ 시조창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의와 결의에 찬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배판곤 성주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장은 “428년전 국란 위기 앞에서 나라와 향민을 구하기 위해 사재와 목숨까지 바쳤던 성주의병들의 충의와 호국정신은 우리고장의 자랑이며 지금까지 이어온 올곧은 선비정신의 뿌리”라고 했다.


그는 또 “도남리는 배덕문 선생의 가족들이 성주 최초로 의병을 창의한 마을로 사재를 털어 성주군사들과 의병을 모아 민관연합부대를 편성해 성주성 수복 활동을 시작한 유서깊은 곳으로 성주에는 가족들이 함께 의병으로 참여한 명예로운 가문들이 많다”며 “의병장과 그 가족들, 이름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의병들의 충의정신이 성주인들의 시대정신으로 승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구교강 군의장은 축사를 통해 “성주군은 예로부터 성주의병, 독립운동가가 그 어느 시군보다 많이 배출된 고장으로 임진란 당시 성주읍성에 관원들이 모두 달아나 동서남문이 함락된 후에도 북문 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킨 현장”이라며 “형제자매 가족이 몰살당한 현장을 꿋꿋하게 지킨 의병들의 그 정신만은 후손들이 꼭 기억하고,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고 했다.
구교강 성주군의장

이어 홍연옥 문화유산해설사가 ‘임진전쟁 성주 의병 창의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를 낭독했다.

배덕문 선생 가족의병대로 시작한 성주의병 창의의 역사적 의미는 첫째 우리고장은 우리가 지킨다는 기치아래 뜻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의병을 조직해 왜적과 싸웠다는 점, 둘째 지휘부는 도망가고 병사들이 흩어져 고장을 버리고 떠난 상태에서 낙심하고 있던 백성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본공연에서는 이석희 선생의 나비야 청산가자(청구영언) 시조창과 배설 장군이 파직된 후 지은 ‘청산아 됴히 있던다’ 창작시조창, 창작판소리 ‘의병들 성주를 구하니’ 공연으로 선비들의 멋과 풍류, 구성진 가락을 통해 의병의 활약상을 전했다.


남도민요 ‘금강산 타령’과 ‘진도아리랑’에 추임새를 넣어 흥겹게 어우러지고, 퇴계의 도산12곡 가운데 한수를 따라 부르며 전통가락의 고요하고 긴 호흡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무리 공연으로 임진전쟁에서 순국하거나 공헌을 세운 의병장과 가족들의 호칭을 아리랑 선율에 맞춰 전 출연진과 관객이 다함께 노래한 ‘의병기림 호칭노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자리에 구교강 성주군의장, 배재만 군의원, 조익현 문화관광과장, 이수경 도의원, 이창우 전 군수, 도일회 전 문화원장, 정규성 전 경북대총동회장 등 내빈과 배한경 성산배씨 차종손 및 성산배씨 문중과 지역주민들이 함께했다.


배윤호 성주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전 사무국장은 “덕암전통문화예술연구회에 배설 장군의 시를 창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배설 장군의 시 ‘청산아 됴히 있던다’는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는 노래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 강토와 백성, 왜와 명나라와의 관계가 짧은 시속에 다 들어있다”고 밝혔다.

배윤호 성주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전 사무국장

이 시는 1597년 8월 15일 배 장군이 조선수군을 파한다는 교지를 받고 경상우수사에서 직위해제된 후, 통제사 이순신도 같은 내용의 교지를 받는데 12척의 배가 있다며 조선수군 폐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 장군은 8월 5일 앞선 전투에서 항명으로 탄핵된 상태로, 또다시 항명을 할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그대로 나와있다.

배 장군은 9월 2일 전함과 장졸을 통제사 이순신에게 맡기고, 경상우수사 때 위수 지역이던 하동의 고소산성 장군바위 밑에서 영리와 종을 데리고 왜군을 탐지하며 수군으로 계속 연락을 보내며 지은 시다.

‘청산은 됴히 있던다. 녹수가 다 반갑다’는 그냥 청산이 아니라 전쟁을 할 때는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모르고 죽지않기 위해 싸웠는데 민간인이 되고보니 조선 강토와 백성들이 보였다는 설명이다.

청산을 조선 강토로, 녹수를 조선백성으로 보고 반가워하지만 5년 전쟁 중에 얼마나 피폐했겠는가?

‘무정한 산수도 이다지 반갑거든’ 생면부지의 이 백성들도 이렇게 반갑거든 ‘유정한 님이야닐러 므슴하리오’ 하물며 함께 싸우지 못하고 임금의 명령으로 떠나온 후 남겨둔 통제사 이순신과 막내동생 배즙 장군을 비롯해 수많은 자기 휘하의 장졸들을 생각하며 너희들과 같이 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토로하는 과정이다.

‘엊그제 언제런지 이리로 저리 갈 제’ 배설 장군이 32세에 무과에 급제해 변방에서 근무하고 6년만에 한양에 와서 주부로 활동하다 임진란을 만나 주로 경상도지역에서 고을 수령을 지낸다. 그 경험이 주마등처럼 지나간 것을 비유한 것이다.

‘월파정 발근달애뉘술을 먹던게고’ 월파정은 지금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월파정 산에 정자가 있는데 고려시대부터 일본사신들이 오고갈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배 장군은 1595부터 1597년 2월 13일까지 선산부사를 지내 월파정이 어떤 장소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왜군들이 조선강토를 짓밟고 있으니 조선과 잘 지낸다며 사신이 오고갈 때에 월파정 달빛아래 뉘술을 먹고 지금 이런 짓을 하느냐? 한탄을 쏟아내고 있는 표현이다.

‘진강의 휘든는 버들이어제런가 하여라’ 중국의 진강성을 말하며, 1597년 정유재란때 선조는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명나라 장수는 군대를 이끌고 진강성에 머물면서 조선의 병조판서 이항복을 불러 조선을 지키러가는데 비용을 흥정하고 있다.

조선은 일본이 명나라를 치러간다는 명분을 대신해 전쟁을 해주고 있는데 명나라는 강건너 불구경하며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400년 전이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다며 일본과 미국, 중국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한반도와 다를 바가 없다는 해석이다.

배윤호 전 사무국장은 “지금이라도 다시 의병정신을 되새겨 이 한반도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자주평화 통일을 이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며 마무리했다.

배한동 민주평통자문회의 대구지역본부장은 “오늘 행사를 준비한 종친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이영희 선생은 교육계의 원로로 은퇴하신 후 선조를 빛내고 성주의병 정신을 그려, 고향 성주의 정체성을 살리는 기회를 만들어줘 감사드린다”고 했다.

또 “이 사업이 다른 마을에도 퍼져 성주가 충절의 고장이자 의병 항쟁의 고장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싶다”고 전했다.

한편, 성주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는 임진란 공신들의 후손인 21개 문중이 참여해 국란 극복에 지도적 역할을 했던 선조들의 위업을 추모하고 나아가 성주군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해 2016년 4월 16일 결성됐다.

이보나 진행자

선무원종공신독권 임진왜관때 공을 세운 선무원종공신들에게 발급한 증서

대검. 1592년 임진년 7월 7일 배설 장군이 부상현에서 왜장 흑전구를 척살하고 노획할때 이 칼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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